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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욕심이나 허황된 꿈보다 자기 능력과 분수를 알고 그에 맞춰 삶을 살아가라는 속담이 ‘뱁새가 황새걸음을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입니다. 그런데 왜 꼭 뱁새와 황새가 짝을 이뤄 등장할까요. 이유는 둘 다 ‘걷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황새걸음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걸음이라는 뜻인데, 황새는 정말 그렇게 크고 육중하게 걷습니다. 크다는 뜻의 순우리말 ‘한’이 붙은 ‘한새’에서 유래한 만큼, 껑충한 백로조차 씨름선수 다리를 붙든 어린애처럼 작아 보일 정도로 황새는 정말 엄청 큽니다. 크고 위압적인 날갯짓 서슬에 웬만한 큰 개도 꼬리 끼고 내빼지요. 반면 뱁새는 참새보다 작습니다. 하지만 뱁새는 달리기 선수입니다. 참새, 까치처럼 모둠발로 종종거리지 않고 두 다리 엇갈려 걷고 필요하면 무서운 속도로 뛰어가는 새입니다. 나무도 수직으로 타고 올라갑니다.

뱁새더러 하지 말란 건 안 어울리는 황새걸음이지 황새 가는 길을 가지 말란 게 아닙니다. 짧은 컴퍼스로 뒷짐 지고 양반걸음이면 뱁새는 멀리 갈 수 없습니다. 꿈이 황새처럼 크다면 자기 다리에 맞게 열심히 뛰어 황새를 앞질러야 합니다. 황새 컴퍼스 부러워 백날 다리 찢어봐야 그 다리로 보조 못 맞춥니다. 가만히 내 몸 훑어보면 그 안에 제 능력과 제 장점이 보이는 법입니다.

휴가철 보내며 뭐 했는지도 모르게 날아간 한 해의 절반이 마음 한편 묵직도 하겠지요. 초조한 마음에 유명인사의 성공스토리를 집어듭니다. 그 책 내려놓으세요. 그 기다란 컴퍼스들과 여태 걸어봤잖습니까. 내 방식대로 가봅시다. 보폭 좁으면 속도를 올리면 됩니다. 짧으면 뛰면 됩니다. 일장일단, 우리는 달릴 수 있지만 가진 거 많은 황새는 무거워 못 뜁니다. 괜한 곁눈질로 고달프지 말아요. 나대로, 생긴 대로 푸닥거리고 날고뛰며 열심히 삽시다. 양반이나 상놈이나 결국은 죽습니다. 사는 동안 나로서 열심히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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