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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EBS 프로그램 <세계의 명화>에서는 2016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를 방송했다. 공중파 주말 영화 라이벌 프로그램인 <OBS 시네마>에서도 바로 전주에 같은 영화를 상영했다. 영화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한 미국 ‘보스턴글로브’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 기자들의 이야기다.

정의와 진실을 밝히는 ‘기자 정신’을 충전하기 위해 2015년 개봉 당시 극장을 찾아 봤던 영화지만 TV에서 보는 맛도 깊었다. 기자들은 성폭력 피해자들과 변호사, 주교와 교구청 등을 다각적으로 취재하며 자료를 찾아내고 증거를 수집한다. 기자들은 사건의 핵심이 몇몇 사제들의 일탈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은폐와 사회적 묵인 아래 상습적으로 벌어지는 구조적 문제임을 밝힌다. 특히 기득권 세력의 회유와 견고했던 침묵의 카르텔에 맞서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교감하는 기자들의 모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장면이 있었다. 특히 스포트라이트 팀원인 샤샤(레이철 매캐덤스)가 9·11테러로 보도가 미뤄지자 주요 제보자를 만나 시간을 더 달라며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요. 기사로 쓸 거고 제대로 낼 거예요”라고 말할 때가 그랬다. 제보자는 그러나 이를 믿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언론에 대한 기대가 깨지고 분노와 불신을 보인 것이다.


정파성 논란에 빠진 한국 언론들

신뢰의 위기 정면으로 맞닥뜨려

복잡할수록 해결책 기본에 있어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구현


예전에는 그랬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사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제보자들은 활자화된 기사를 원했고, 보도되지 않으면 절망했다. 그때 뉴스는 언론사가 독점한 게이트키핑(gatekeeping·문을 지키고 서서 무엇을 통과시킬지 결정하는 것처럼 뉴스를 선택하는 작업)의 산물이었다. 어떤 인물, 사건, 이슈를 어떻게 뉴스로 내보낼지 결정하는 것은 기자들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뉴스를 전달할 수 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전문가와 유명인사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소식과 논점들이 가득하다. 이것들이 또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언론의 게이트키핑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SNS에는 언론과 기자를 향한 야유와 냉소가 드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 언론에 쏟아진 공격과 비판은 언론인에게 깊은 상처와 당혹감, 인식의 혼란을 동시에 줬다. 이런 공격이 사실관계보다는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것이라며 부당하게 여기고, 분노만 한다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배정근 숙명여대 교수 ‘신문과 방송’ 2020년 3월호)

지금 언론은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미디어 종사자들은 미래를 낙관하지 못한다. 신문의 구독률은 떨어지고, 뉴스에 광고를 접목시켰던 수익모델은 종점에 다가섰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안에서 뉴스의 대부분이 소비되고 인공지능(AI)으로 맞춤형 뉴스가 제공되면서 독자들의 확증편향에 부합하는 뉴스가 환영받고 있다. ‘가짜뉴스’도 홍수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원칙과 디지털 환경에서의 새로운 수익모델도 찾아야 한다. 가뜩이나 정파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언론에 풀어야 할 숙제는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할수록 해결책은 기본에 있을 것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보도하는 저널리즘의 구현이 하나의 방법이다. ‘신문과 방송’ 3월호에서 ‘다시, 저널리즘’을 주제로 언론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원칙들을 집중 점검하고, 저널리즘 회복을 위한 언론계의 노력들을 소개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경향신문 역시 재난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기 위한 ‘코로나19 보도준칙’을 공표했고, 객관적이고 명료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의 기사 작성을 위한 매뉴얼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세기 동안 저널리즘이 순탄하게 성장해온 것은 아니다. 정략적인 집단과 맞서야 했고, 자본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뿌리치기도 했다. 상업주의와 싸우면서 객관성을, 정치세력과 맞서면서 자유언론과 사회책임을 전통으로 세워 저널리즘의 이상과 실천과제를 다듬고 다져왔다… 저널리스트들은 무엇보다 진실을 추구하고 이를 완벽하게 보도해야 한다.”(한국언론재단, 저널리즘 실무형 안내서 <현장기자를 위한 체크리스트> 서문 중)

그렇다. 다시 저널리즘이다. 미디어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의 본질은 저널리즘에 충실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박재현 미디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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