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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저녁에 나는 카프카의 <소송>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다과와 맥주가 제공되었고, 같은 책을 읽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토론을 하면 할수록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두가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카프카의 책이 원래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때 독서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도 그와 같았으리라. 그날의 감정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그때 함께 마신 맥주는 모두에게 죄책감의 형태로 그날 이후로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무겁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 맥주를 마시던 순간 나는 그날 일어난 사건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으니까 평상시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면 된다고. 독서모임을 하고 맥주를 마셔도 된다고. 패닉에 빠지지 말라고 내 뇌가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는 멀쩡하게 살아있기 위해 사실을 부인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이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나의 살아있음이 잔혹하게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의 법과 제도는 누군가의 피와 눈물 위에서 만들어졌다. 안전하고 평범한 하루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일상이 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이 없던 일이길 간절히 바라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지만,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을 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인류가 조금씩 진보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진실은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우리를 상처 입힐 테지만 오히려 날카롭게 베였기 때문에 잘 아물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빛은 상처 난 곳을 통해 들어온다. 나는 정확히 알고 싶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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