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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의 잔인한 그날이 정신없이 지나고 다음날 보고가 왔다. 계열사 직원의 아이가 그 배에 탔다는 소식이었다. 무작정 진도에 내려갔다. 눈에 띄는 게 조심스러워서 작은 차를 하나 구해 타고 조용히 실종자 가족이 머무는 체육관 근처에 가서 전화를 했다. 그러고도 한참이 더 지나 292번째로 아이는 두 달 만에 부모에게 돌아왔다. 그 잔인했던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상처 받은 유가족을 향해 비난하거나 비아냥을 하는 것은 정말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가끔씩 그 아빠인 직원도 TV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소속 계열사 대표를 불러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 아빠가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 하도록 내버려두라” 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연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계열사 말단 직원에게 닥친 불의의 사고에 무작정 차를 몰고 가서 두 번 만난 얘기며, 많은 이가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재벌 총수의 자기자랑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러고 싶었다면 5년 만에 사연을 조심스레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랬다면 그 직원은 동지라고 팥죽을 선물로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에도 억울한 죽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용균씨처럼 일터에서 일하다 죽고, 성북구 네 모녀처럼 살아보려 발버둥쳤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죽음은 공평하지 않아서 주로 힘없고, 돈 없고 말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박 회장과 많이 달랐다. 잠시 슬퍼하다가 금세 잊거나 모른 척, 아닌 척, 매몰차게 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11월29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마공원 소속 기수 문중원씨(당시 40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사회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겼다. 문씨는 자비로 해외 유학을 다녀와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업무를 맡지 못했다. 빽도 없고 돈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부산경마공원에서는 2004년 개장 이후 기수와 마필관리사 등 7명이 부조리한 구조와 저임금·장시간 노동, 인권유린 등의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마사회는 기수·조교사 면허의 교부와 갱신 권한이 있는 최고의 기관이지만 유족이나 기수들이 만족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씨 아버지는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길거리에 주저앉았지만 유족과 김낙순 마사회장의 만남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신월 빗물펌프장 배수터널에서 하청업체 직원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이들을 살리러 터널에 들어갔던 현대건설 직원 안모씨가 빗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양천구청과 서울시는 호우주의보에도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사고 수습 후 이주노동자의 분향소는 처음엔 차려지지도 않았다. 찾아오는 이도 드물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흘렀지만 국가는 유족들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 내용도 볼 수 없었다.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책임자인지 묻기 위해 안씨 아버지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 같은 죽음의 레이스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오늘은 안녕할까.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는 성실한 사람들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주인공 리키는 택배노동자로, 부인은 방문요양사로 아침부터 밤늦도록  일한다. 그토록 일하는 이유는 내집을 장만하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 잘해 대학에 다니는 꿈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할수록 빚은 늘어가고 가정은 위기에 처한다. 강도를 당해 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거리에 나앉지 않고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리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새벽에 다시 택배 트럭에 시동을 걸어야 했다.

영화는 현실같고 현실은 지옥같다. 집값은 쉬지 않고 올라 평당 1억원 시대가 됐고, 일자리 규모가 쪼그라들고 질은 떨어지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은 곳곳에 허점이 보인다. 그러나 영화보다는 현실에서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다. 리키는 홀로 삶의 전쟁에 나서지만, 유족들은 시민사회와 뭉쳐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혁신과 포용, 공정과 평화를 바탕으로 ‘함께 잘사는 나라’로 나가자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렇지만 그 전에라도 주저앉은 아버지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I’ll be by your side.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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