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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불안이 팽배하고 청년의 삶이 점점 더 위태롭다. 88만원 세대로 시련이 예고되었던 한국의 청년세대는 오늘날 삼포, 오포, 칠포세대라고 불린다. 생애의 대사와 희망 어린 삶의 항목을 하나하나 지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제 청년들 사이에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신분론’이 번지고 마침내 ‘헬조선’을 외친다. 청년의 비관이 운명론으로 바뀐 것이다.

대한민국을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지옥 같은 신분의 제국이라 선언한 셈이고, 스스로를 운명의 감옥에 갇힌 수인의 신세라고 여긴 셈이다. 자조 섞인 절규가 아닐 수 없다.

아픈 청춘, 운명의 수인이 된 청춘에게 어른들은 기껏 ‘아프니까 청춘’이라거나 ‘분노해야 한다’고 훈수를 둔다. 아픈 청춘에게 아픈 게 당연하다 하고, 응답할 수 없는 신세의 청년들에게 분노하라는 요구는 공허한 ‘꼰대질’일 수 있다. 신년 특집으로 청년문제를 다루고 있는 한 언론의 기획기사에 실린 청년들의 목소리가 신랄하다. “당장 청년에게 계급투표를 하라거나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는 이야기는 ‘꼰대질’로 보일 뿐이다.” “청년들에게 ‘계급투표’를 하라고 한다.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싶더라. 도대체 계급투표를 하려면 어디다 하면 되느냐고. 과연 우리 세대의 이익을 반영하는 정당이 존재하는가?” “획일화되고 역동성이 정체된 구조에서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싶겠느냐?” “청년에게 투표 인증샷 캠페인이나 하도록 하는 정도의 발상으로 청년이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정당”이라며 봇물 쏟듯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정치에서 20대에서 40대는 정치적 공백지대가 된지 오래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 가운데 40세 미만은 9명이고 초선의 평균 연령이 56.4세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의원 평균연령은 58세이고 20~30대는 9%에 그친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새누리당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정이 이러니 정당에서 청년의 기준은 45세 이하다. 더불어민주당은 45세 이하로 정했다가 최근 39세 이하로 조정했다. 게다가 20대 청년층의 투표율은 60대 이상 투표율의 절반에 그치고 선거인 규모도 20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게 정치이기에 청년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지 않을 수 없다. 청년에게 다가가지 않는 정치와 정치에 다가설 수 없는 청년의 처지가 꼬여 한국정치는 미래 없는 어둠에 갇혀 있다.

총선연대 청년유권자 투표참여 촉구서명운동_경향DB

이제 우리 시대에 청년은 ‘청년’이라 쓰고 ‘불안’이라 읽힌다. 포기이고 절망이라 부른다. 실업이고 비정규직이고 빈곤이고 알바이고 공백이라 말한다. 아프니까 청년이라고 다독이거나 분노해야 하는 이유를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청년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분노하고 저항하고 개입할 수 있는 무기를 청년들에게 쥐여줘야 한다. 기성세대와 달리 이익의 기반을 갖지 못한 청년세대에게는 버티고 일어설 수 있는 제도와 조건을 갖추어줘야만 한다. 그래서 청년의 불안에 ‘정치’가 응답해야 한다. 청년정치가 서고 청년정책이 설 수 있게 정치판을 혁신해야 하는 것이다.

청년에게 응답하지 않는 ‘꼰대정치’야말로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한국정치의 본령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몰아붙이고 정당과 국회를 협박하는 대통령의 ‘교시정치’는 청년들에게 꼰대정치로 비친다.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송하며 국민의당 창당에 합류한 고희를 넘긴 전직 교수의 위태로움도 청년들에게는 못 말리는 꼰대정치일 것이다. 또 호남을 외치며 호남정신을 왜곡하는 지역주의 정치세력, 혁신정치의 광풍을 맞거나 정쟁에서 밀려난 구태 정치인들이 총선을 앞두고 신당을 만들다가 결국 기득권으로 합당하는 정치놀음도 꼰대정치이기는 매한가지다. 비전도 정체성도 정책도 인물도 없이 권력과 금배지로만 향하는 꼰대정치의 굿판을 이제 걷어야 한다. 인물과 제도와 문화를 갈아엎어 청년에게 활짝 열린 혁신의 정치판을 차린 후, 청년을 초대하고 청년을 후원하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청년은 미래다. 청년정책 없는 정치는 미래 없는 정치요 미래 없는 국가다. 청년의 문제는 언제나 문화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청년의 문제는 일과 삶과 생존의 문제이고 그것은 곧 국민적 삶의 문제이다. 그래서 청년정책은 민생정책이고 국가의 미래정책 그 자체다. 정치권이 총선을 향한 레이스를 준비 중이다. 청년을 향한 그리고 미래를 향한 혁신적 비전과 정책과 사람으로 차려진 신선한 메뉴를 보고 싶다. 그래서 정치가 ‘꼰대질’이 아니라 청년의 아픔을 담고 청년을 끌어안아 바로 ‘그대들’의 것이라고 말해줘야 한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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