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재·보궐선거에선 유독 전략 공천을 많이 한다. 국민의 관심이 소수 지역구에 집중되는 가운데 그 몇 곳에서의 선거 결과가 정당 전체의 위상과 실력으로 가늠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필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가 창당 명분에 걸맞게 ‘새정치’ 수행 능력을 후보적합도 평가의 제일 기준으로 삼기를 희망했다. 그것으로 새정치를 염원하는 수많은 시민들로부터 당이 새정치를 추진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대안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쌓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새정치 없이’ 치른 6·4 지방선거의 한심한 결과를 참담함으로 받아들였다면 의당 그 정도의 기준은 확고히 세우리라고 기대했다.
이른바 ‘안철수 세력’이 줄곧 강조해왔으며 민주당이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지금의 연합정당을 탄생케 한 ‘새정치’의 핵심 목표는 기득권 체제를 타파하여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혁파할 양대 기득권은 정당 내부와 정당들 사이에 하나씩 존재하는바, 전자는 공천권이며 후자는 지역독점권이라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둘 다 제도개혁을 통해서만 타파할 수 있는 것들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금번 새정치연합 공천 과정에서 거명된 후보들 가운데 새정치의 실현이 제도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정치가는 네 명뿐이었다. 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김두관 등이다. 새정치연합이 구정치 세력과의 진검승부를 걸기로 작정했다면 당연히 그 네 사람은 ‘전장’에 내보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중 둘은 사실상 ‘전략 배제’해버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특히 천정배 배제 과정은 가관이었다. 아무리 재·보궐선거라지만 새정치연합의 독과점 지역인 호남에서는 민주적 경선과정을 거치는 것이 새정치하겠다는 정당이 취할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러나 ‘임명직 국회의원’을 간택하는 구정치 방식을 고수했다. 그러곤 도리어 경선 제안자인 천정배 전 의원이 ‘올드보이’로 매도당하도록 했다. 전략공천 카드는 동작을 같은 곳에 거물급의 투철한 제도개혁론자를 내보내는 데 써야 했다. 항간에는 광주 광산을과 서울 동작을의 공천 패착이 7·30에서의 새정치연합 전체 지지율을 각 5%씩은 떨어트렸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새정치연합의 7·30 성적표는 이미 나온 것이나 진배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오른쪽부터)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출처 : 경향DB)
권은희나 기동민 후보가 천정배나 정동영 전 의원보다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떨어져서 하는 말들이 아니다. 문제 삼는 것은 왜 그들을 지금 이 시기에 그런 방식으로 등장시키느냐는 것이다. 2등 자리를 독점하는 것이 당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면 7·30에서 새정치연합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안정당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종국엔 그 알량한 ‘2등석 독점권’마저 빼앗길지 모른다.
막연한 ‘신진대망론’은 버려야 한다. 새정치를 위해 시급한 것은 새 제도이지 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회의원 교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7대 국회의원의 63%가 초선이었고, 18대 때는 45%, 지금 19대는 49%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언제나 구태의 연속일 뿐이다. 사람이 아닌 구조와 제도가 문제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부대 자루는 낡은 그대로인 채 새 술만 자꾸 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술이 썩거나 부대가 찢어질 뿐 아니겠는가.
물론 사람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저 새롭고 보기 좋은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정치 구조와 제도를 혁파해낼 수 있는 능력과 신념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기존 제도에 순응하지 않고 그걸 타파해낼 수 있는 제도개혁가는 정치현장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나 30년간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가운데 깊은 고뇌와 성찰을 거듭해야 비로소 탄생한다. 7·30 공천은 이미 끝났다. 이제 희망은 내년 3월의 전당대회와 2016년 총선에나 걸어봐야 할 듯하다. 그때엔 제발 유능한 제도개혁가들이 전면에 등장하여 새정치연합을 진정한 새정치 추진체로 만들어 주길 지금부터 고대한다.
최태욱 | 한림대 국제대학원대 교수
'정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예비타당성 조사 완화라니, 4대강 교훈 잊었나 (0) | 2014.07.20 |
---|---|
[기자칼럼]같은 색깔만의 정부 (0) | 2014.07.18 |
[사설]집권 17개월 만에 총리·장관 후보자 9명 낙마 (0) | 2014.07.16 |
[사설]김무성 대표, 대통령 아닌 국민 바라보고 가라 (0) | 2014.07.14 |
[사설]감시받고 모욕당하는 세월호 유족들 (0) | 2014.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