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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관추천위원회가 추천한 8명 중 조재연 변호사와 박정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통령에게 대법관 후보로 제청했다. 그동안 대법관 후보로 ‘서울대 출신, 50대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법원장급 현직 엘리트 남성 판사’들이 거의 획일적으로 제청되던 데 비하면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판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이나 법학교수 중에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다양성을 결여한 대법관 후보 제청의 관행은 대법관을 판사의 최종 승진코스로 여기는 법관순혈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법무부가 2015년에 발표한 ‘역대 대법관 구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2015년까지 재임한 전체 대법관 142명 가운데 판사 출신이 124명으로 87.3%, 서울대 출신이 102명으로 71.8%에 이르고, 여성은 4명으로 2.9%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 대법원은 같은 대학을 나온 50대의 선후배 남성 판사들에 의해 장악돼 온 것이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사법제도를 가장 많이 수입했기 때문에 우리와 사법체계가 가장 많이 닮아 있다는 일본에서는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일본 헌법에 의하면 대법원장은 내각의 지명에 의해 일왕이 형식적 임명권을 가지며, 나머지 대법관들은 내각이 임명한다. 대법관의 자격이나 인원에 대한 규정은 헌법에 없고, 의회가 만든 재판소법에 있다. 일본 재판소법에 의해 대법관은 총 14명으로, 그중 최소 10명은 판사, 검사, 변호사, 법률학 교수 등 전통적 법률가에서 임명해야 하지만 나머지 4명은 변호사 자격이 없더라도 식견이 높고 법률적 소양이 있기만 하면 된다. 후자를 ‘학식경험자’라고 하는데 교수, 외교관, 행정관료 등이 학식경험자로 대법관이 되는 것이다. 그간 대법관에 임명된 학식경험자는 수십명이나 된다.

우리 법원이 이웃 일본의 사법제도를 그렇게 많이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위한 부분만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필자는 예전부터 몹시 궁금했다. 일본 이외에도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캐나다, 스페인 등 거의 모든 서구 선진국들이 최고법원 재판관 인적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왜 이토록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가 중요한 것일까? 우선 최고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성은 헌법상의 민주주의 원리가 요구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원리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가급적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반영함으로써, 대법원의 재판이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성 확보는 정치과정에서 충분히 대표되지 못한 소수자와 약자의 이익이 대법원 재판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다수의 지배’와 함께 ‘소수의 보호’를 이념으로 하는 민주주의 원리를 한껏 실현시킨다. 또한 다양한 배경의 대법관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아지게 되어 국민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국민의 대법원’이 되게 하고, 사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에 대한 반론들도 있다. 인위적인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화 추진은 재판 능력이 우수한데도 대법관이 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이를 역차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중 하나다. 기득권 논리에 젖어 있는 일등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대법관 후보로 주목받을 정도의 인물이면 모두 자질이 뛰어나서, 재판능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해 그중에서 다시 우열을 가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건을 올바로 파악하고 재판하는 데 기여하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구성원들이 대법원 재판을 담당하도록 해야 대법원 판결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이 서로 경쟁하고 보완할 수 있다. 이는 또한 획일화된 인적 구성의 대법원에서 나올 수 있는 집단적 편견에 입각한 재판의 오류를 방지하고 ‘재판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현실적 대안이 된다.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성 확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법관의 자격요건을 확대·개방하는 법원조직법의 개정이나, 대법관추천위원회가 대법관 후보 추천과정에서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담을 수 있게 위원회 운영과 구성에 관한 민주적 통제 규정을 법원조직법에 상세히 둠으로써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개헌이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는 말이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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