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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으로 국정농단세력을 물러나게 했지만 지난 한 달 반을 반추하면 적폐세력들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기득권세력이 한순간에 바뀌거나 적폐들이 저절로 청산되는 것은 아니며,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가 정도는 각오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그들의 저항이 아주 빠르고, 대담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국정진행에 대한 비상식적 방해에 나선 야당의 공세는 물론이고, 최근에 불거진 사드 조기배치와 대북정책 논란은 구세력들의 조직적 저항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따지고 보면 사드 배치 문제는 처음부터 박근혜 정권의 안보 포퓰리즘의 일환이었으며, 대통령 선거와 연동해 지지자 결집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후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자 가속화에 나섰던 것이다. 심지어 탄핵된 이후에도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배치한 것은 의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미 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스테판 옴스테드 예비역 해병대 중장(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이 중국군의 포위를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로, 중국군의 진출을 지연시켜 흥남철수가 가능했다. 콴티코 _ A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사드 배치에 대한 한·미의 원래 합의는 금년 말까지 1기를, 나머지 5기는 내년에 배치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내법과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탄핵국면에 들어서고 난 후 서둘러졌다고 말하면서 “매우 충격적”이라고 했다. 이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가 당초 합의를 깨고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국내법 등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국방부는 사드 배치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완전히 투명하고 긴밀하게 진행해 왔다고 반박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추론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사드 조기배치는 한국 측의 강력한 요구와 미국 측의 편승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필자가 위원으로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에서 추가 4기 반입에 대한 보고를 누락했던 일에 대한 재보고 미팅을 하면서 추궁한 결과 조기배치를 주도한 것은 국가안보실이라는 답변을 분명히 들었다. 이와 관련,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1월과 3월의 연이은 방미는 주목을 끈다. 재임 시 총 3번의 방미 중 2번이 대통령 탄핵국면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당연히 조기배치를 위한 방미였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원래 합의를 깨고 조기배치하기로 합의한 문건이 있는지, 구두로 합의한 것인지가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안보실장이 대통령 부재상황에서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했다면 분명 월권이다. 그리고 정권교체 이후 4기의 추가 배치사실에 대한 보고누락은 적폐세력의 항명이라는 맥락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최근 문정인 특보의 발언논란도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문 특보는 방미기간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할 경우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의 보수언론들과 보수야당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미동맹 훼손이라는 낙인을 덧씌웠고, 미국 내 반발을 거론하며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이 모든 과정을 문 특보의 과잉발언에 대한 당연한 반발과 교정 정도로 정리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미국 내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한국이 논란을 키워서 뒤이은 미국의 파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지난 정부의 적폐인 반미종북 프레임의 흑백론이 재부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없는 논란을 의도적으로 키움으로써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우리 입지를 약화시켜버렸다는 점에서 국익을 훼손한 것은 그들이다. 같은 동기를 품고 이번에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흠결과 실패를 찾으려 안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이 아무리 설명하고, 전제조건을 달아도 믿기는커녕 들을 생각조차도 없었다. 북한을 먼저 방문할 수도 있다고 했을 때도 미국과 협의해서라는 단서를 의도적으로 빼버렸다. 문 특보 발언에서도 미국과의 협의하에 군사훈련의 축소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전제는 당연히 빠졌다. 트럼프의 햄버거 대화 용의 발언이나,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면 영예로울 것이라는 발언들이야말로 전제조건 없는 대화제의로 문 대통령의 발언보다 훨씬 더 문제의 소지가 있다. 결국 말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말했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미국 내 소수의 강경파들이 지닌 문 대통령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한국 적폐세력의 저항과 연결되면서 신정부를 흔드는 것이다. 그러나 촛불 전에는 통했을지라도, 후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믿고, 국민이 믿는 대통령을 믿는다. 그래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적폐들의 시대를 규정했던 ‘이것이 외교냐?’를 넘어 ‘이것이 외교다!’라고 당당히 보여줄 것을 믿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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