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중관계의 현안을 생각하다 벽에 부딪힐 때면 가끔씩 시각을 바꾸어 국제사회는 한국과 중국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그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통일과 민족주의 사이의 모순 같은 연계성이었다.
지구촌에는 아직 두 곳의 분단국이 존재한다. 하나는 한반도에 위치한 한국과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中華人民共和國)과 대만(中華民國)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71년 10월에 유엔에서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인정받고 정식 회원국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까지 차지했다. 반면 한국과 북한은 1991년 9월18일에 개최된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각각 별개의 의석을 가진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하였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엄밀히 본다면 중국은 아직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했고 한국은 분단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중국은 모두 분단의 상황이면서도 민족주의적 성향은 강하게 표출된다. 한국과 중국은 민족주의를 통해 공동체 의식의 심화와 함께 국가와 민족에 대한 헌신과 희생, 그리고 충성을 강조한다. 반면 서구사회에서는 민족주의 이론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며 대체적으로 민족주의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어왔다.
민족주의 이론에서 원래 주류를 이루었던 전통주의자들은 ‘민족’이 오랜 기간에 걸쳐 언어, 관습, 종교 등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새로이 주류를 형성한 근대주의자들은 <상상의 공동체(Imaged Communities)>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과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의 에릭 홉스봄 등을 중심으로 ‘민족’은 근대시기에 처음 생겨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신화, 관습, 심지어 왜곡된 역사를 대중들에게 주입하여 형성된 공동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꾸며진 민족 정체성은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이익 또는 특권을 위해 대중을 결집시키고 움직이게 만드는 효과적인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 학파는 모두 어떤 동기와 경로를 지나왔든 일단 대중들 사이에 하나의 정체성이 공유되면 그들은 하나의 끈끈한 공동체 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높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오히려 분단국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한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혹시 한국과 중국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최근의 양안관계는 전통주의 이론이 설명하듯 오랜 기간에 걸쳐 민족 공동체가 형성되었더라도, 구성원 일부가 단절된 상황에서 다른 가치와 체제가 지속된다면 근대주의 이론과 같이 언제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또 다른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도 이를 인식하고 홍콩 반환 협상에서 제시했던 한 나라에 두 체제라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비롯해 그간 대만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근래에는 경제적 통합을 모색해왔다. 많은 양보와 특혜를 대만에 제공하며 2010년 6월에 양안 간 FTA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다.
하지만 경제적 통합이 정치, 사회 영역의 결합으로 확대된 EU의 사례와는 다르게 양안 무역량이 늘어날수록 양안 결혼율은 감소했다. 2014년에는 대만에서 ‘해바라기 운동’이 일어나며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제동을 걸었다. 작년 홍콩 대규모 시위 이후에는 일국양제에 의문을 표하고 독립성향을 가진 민진당 소속의 차이잉원(蔡英文)이 올해 1월의 총통 선거에서 큰 표 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특히 대만 국립정치대학은 매년 대만 주민의 정체성 조사를 실시하는데 1992년 처음 실시할 당시 자신이 대만인이라는 대답은 17.6%, 중국인은 25.5%였다. 하지만 올해 6월의 조사결과는 대만인 67%, 중국인 2.4%였다.
이러한 양안관계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구경일까? 남북통일은 단기적으론 혼란과 어려움을 주더라도 장기적으론 우리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 내에서 통일의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보인다. 한반도에서도 서로 다른 가치와 체제로 단절된 시간이 길어지며 외적으론 한(韓)민족 공동체를 당연시하면서도, 내적으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리된 공동체를 만들어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할 시기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정치 칼럼 > 정동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칼럼]퍼스트레이디는 평생교육자 (0) | 2020.12.24 |
---|---|
[정동칼럼]안철수의 ‘퀸즈 갬빗’과 정부의 위기 (0) | 2020.12.21 |
[정동칼럼]새해는 지방자치 30년 (0) | 2020.12.17 |
[정동칼럼]다시, 교육개혁을 논하자 (0) | 2020.12.11 |
[정동칼럼]무엇이 모순된 사고를 가능하게 했을까 (0) | 2020.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