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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Dr.) 질 바이든은 미국 대통령 당선자 조 바이든의 부인이다. 트위터에는 자신을 “평생교육자(lifelong educator)”라고 소개한다. 왜 하필이면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질 바이든은 평범한 여성들처럼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이미 이혼 경력이 있는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두 아들을 홀로 기르고 있던 조 바이든을 만나 결혼한다. 결혼 후 교사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그는 웨스트 체스터 주립대학에서 읽기교육 분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전일제로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기당 한 과목씩밖에 수강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얼마 후 딸이 태어났고,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전업주부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 후 병원 장기입원아동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복귀하게 되고 석사 때 배운 전공지식을 활용해서 정서장애 아이들에게 읽기와 역사를 가르친다. 그러는 동안 그는 또다시 영문학으로 두번째 석사학위를 받는다. 그에게 학위는 새로운 인생경로를 열어가는 열쇠와 같았다.
이후 그는 커뮤니티 칼리지로 일터를 옮겨 영작과 글쓰기를 가르친다. 커뮤니티 칼리지의 학생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생’과는 많이 다르다. 저소득층이나 이민자뿐만 아니라 경력단절 여성들도 많다. 이들에 대한 애정을 질 바이든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 사람들이 좋습니다. 가르칠 때 마음이 편안해요. 여성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위에 도전하는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사실 그의 첫 대학도 커뮤니티 칼리지였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2007년 나이 55세에 질 바이든은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교육학 전문박사(Ed.D) 학위를 받는다. 논문 제목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의 학생 등록유지에 관한 연구’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던 그 학생들의 생활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주제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주로 저소득층, 이민자, 직장을 가진 성인, 늦깎이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입학을 하며, 상대적으로 중도탈락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는 학생들은 하버드나 예일처럼 학문과정에 잘 준비된 아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정규대학에 못 가는 루저들이 가는 곳도 아니다. 커뮤니티 칼리지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첫째, 대학 1~2학년 교양과정을 통해 4년제 대학으로의 준비과정을 제공하는 기능이다. 천문학적인 대학 등록금 때문에 수많은 고교 졸업자들이 커뮤니티 칼리지를 선택한다. 많은 경우 무상일뿐더러 졸업성적이 A- 이상이면 주립대학에 자동편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둘째, 절반의 기능은 주로 직장을 가진 성인들을 위한 비학위 과정이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대학 보편화시대의 기초이며, 그래서 그는 커뮤니티 칼리지를 “오늘날 미국을 만드는 한 가지 비밀”이라고 표현한다.
얼마전 어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가 질 바이든의 ‘닥터’ 호칭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을 하면서 한동안 떠들썩한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는 질 바이든의 박사학위가 학술박사(Ph.D)가 아닌 전문박사(Ed.D)였다는 점을 들어 그를 박사 호칭에 목을 맨 정신나간 여자쯤으로 매도했다. 하지만 질 바이든의 학위는 긴 생애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터에서,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기 위해 필요했던 실용적 결과물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닥터’라는 호칭은 명예를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바이든의 부인’이 아닌 한 사람의 당당한 전문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깃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차기 미 대통령 부인을 찬양할 의도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질 바이든이 70 생애 동안 삶과 직장, 전문성을 쌓아온 그만의 학습생애사는 분명 다른 엘리트 출신자들이 거쳐온 과정과 사뭇 달라보인다. 귀족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예일로 직행하는 길과 다르다. 전문대학에서 시작해서 일반대학으로 편입하고, 이후 석사와 박사를 통해 전문성을 쌓아오는 과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평생학습자들의 전형적 도전과정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평범함 속의 도전”을 읽는다.
영어교사로 시작한 그의 ‘교육자’적 삶은 고등학생, 정서장애 아동, 그리고 늦깎이 성인학생으로 이어졌다. 그는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르침은 나의 일일 뿐만 아니라 내 존재 자체이다(Teaching is not what I do. It’s who I am).” 스스로 평생학습자로 살아온 삶이고, 참으로 그의 입에서 나온 평생교육자다운 말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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