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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奎章閣)에 가 본 적이 있는가. 규장각은 현재 서울대학교 캠퍼스 내, 관악산을 바라보는 둔덕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거의 매주 학교를 견학하는 중고생들이 집결하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비교적 찾는 발길이 뜸한 곳이다.

규장각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도 창경궁 후원에 규장각 건물이 남아있고, 병인양요에 소실되기 전까지 장서를 나누었던 강화도 외규장각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규장각은 단순히 특정 건물이나 장소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국가를 관통하는 어떤 정신이자 원칙이었다.

조선이 통치과정의 기록에 관한 한 편집증적일 정도로 철두철미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 왕실은 472년간의 통치를 5000만자(字)에 이르는 <조선왕조실록>으로 남겼다. 사관들은 왕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초(史草)로 적었으며 이 사초는 이후 왕이 죽고 세대가 바뀌면 실록으로 편찬되었다. 사관 없이는 그 누구도 왕을 독대할 수 없도록 경국대전은 규정하고 있었으며, 사관이 쓴 사초를 왕이 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한편 왕을 보필하는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은 국정에 관한 매일의 기록을 <승정원일기>로 남겼다. 임진왜란과 화재 등으로 절반 이상이 소실된 것을 제외하고서도 2억5000만자 분량의 포괄적인 통치 기록이다. 매일 1만자를 읽어도 거의 70년이 걸리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 이외에도 <일성록>은 왕이 스스로를 ‘나(余)’로 칭하는 일기로서, 후세 왕들이 일목요연하게 참고할 수 있는 반성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남겨진 역사적 기록의 물리적 분량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그 뒤에 숨어있는 정신이다. 조선의 정치는 왜 기록을 남기는 데 그토록 집착했으며 누구를 ‘독자층’으로 생각했던가? 그리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것의 이점, 역사를 남기는 이점은 무엇이었나?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은 통치 기록과 행정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왜냐하면 성공과 실패에 이르는 자세한 시행착오의 기록 없이 국정운영은 일관적이지도, 향상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 <일성록>이나 <승정원일기>는 실제로 이렇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록’을 왕이 열람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하니, ‘데이터의 축적’이라는 것이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아마 기록을 남기는 데 조선왕조가 그토록 집착한 더 중요한 이유는 역사에 대한 경외감과 그 경외감을 통해 더 나은 정치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통치의 세부적 과정이 기록되고 있고 이것이 언젠가는 역사 앞에서 결국 까발려지고 평가될 시간이 오고 있다는 사실, 그 앞에서 겸허하지 않을 전제군주는 없었을 것이다. 현세의 어떤 권력도 역사의 긴 호흡 앞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며,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이름으로 남는가 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국왕들은 겉으로는 ‘종묘사직’을 부르짖었지만 실지로는 미래의 ‘실록’ 독자들을 끊임없이 생각했던 셈이다. 나는 이런 정신이 규장각에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백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규장각은 어디에 있는가. 근대과학기술문명이 중세의 암흑을 대체했다고 하지만, 통치의 과정은 조선시대가 훨씬 더 투명하였고, 민주정이 왕정을 대체했지만 정치의 기록은 오히려 청와대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독점되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가장 큰 문제가 된 시대에 왜 통치의 공적 기록 대신 개인의 자서전들이 과거를 독점하는가. 이렇게 본다면 우리 정치는 조선의 왕정보다도 후진적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퇴각’하면서 26대의 문서 파쇄기를 사들였고 국정운영의 거의 어떤 정보도 인계하지 않았다.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되기 이전 전임대통령들은 청와대를 나올 때 문서를 소각하거나 트럭에 싣고 나왔다는 보도들도 있었다. 어쩌면 북방한계선(NLL) 발언 정국 등을 통해 재임 중 기록물을 최대한 없애는 게 가장 현명한 처신인 것을 우리 정치가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앞에 놓인 우선적인 작업은 대통령기록물법 등의 정비를 통해 정부가 실질적인 통치의 기록을 축적하고 체계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가 기록과 증거를 통해 스스로의 의사결정을 정당화하고 그것으로 평가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곳에 우리의 규장각이 있지 않을까.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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