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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첫 청사진이 어제 발표됐다. 2018년 예산안과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요약하면 고용 없는 성장에서 벗어나도록 일자리와 복지 분야에 재정을 집중 투입해 사람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도 총지출을 전년보다 7.1% 늘린 429조원의 슈퍼예산을 집행하겠다고 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 이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보다 2.6%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가 수년간 2~3%의 성장에 그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확장재정을 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증액되는 지출을 복지(12.9%)와 일자리부문(12%) 등 사람과 관련된 분야에 집중적으로 확대 편성하기로 했다. 경제성장의 효과가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 중소·자영업 및 내수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실종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사회의 양극화와 극심한 취업난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재정을 풀어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는 정책은 오히려 늦은감마저 있다. 저소득 가구의 가처분 소득 감소에 대한 타개책으로 복지 지출을 동력으로 소비를 진작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기대할 만하다. 이를 위해 일자리와 분배,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재정의 선도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하지만 몇 가지 점검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향후 5년간 확대재정을 펼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럴 여력이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내년도 총수입을 전년보다 7.9% 증가한 447조1000억원으로 계획하고 있다. 향후 5년간의 재정지출은 연평균 5.8% 늘리겠다고 한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기껏해야 3% 정도 수준이다. 그만큼 적자가 날 공산이 크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정부는 또 향후 5년간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채용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내년에 국민 생활·안전 분야 중앙직 공무원 1만5000명, 지방직 1만5000명 등 총 3만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지금 연간 공무원의 인건비는 35조8000억원에 달한다. 공무원 채용은 비탄력적인 세금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장기적으로 운영 가능한지 숙고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 청년 3명 채용 시 1명의 급여를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고용장려금의 경우 악용되지 않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20% 줄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대형 국책사업이 예정돼 있어 자칫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다. 일시적인 감축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독을 해야 한다.

특히 국방예산은 이번 기회에 방향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국방예산을 2조8000억원(6.9%) 늘려 편성했다. 자주국방과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무기체계 사업에 대한 예산배정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막대한 국방비 투입에도 불구하고 전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첫 예산안의 큰 그림은 무난하지만 향후 5년간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쓸 곳에는 쓰겠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런데 복지예산은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을 보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으로 내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속가능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혹여나 일단 재정을 쓰고 문제가 발생하면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란다. 증세 없는 복지가 환상임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요행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예산을 짤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증세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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