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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칼럼에서 사면초가의 외교 난맥상을 논한 적이 있다. 당시 국정공백 속에서 미국의 사드 알박기와 중국의 제재, 일본의 평화의소녀상 철거압박에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등 사방에서 우리를 물어뜯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상황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북한은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고, 미국은 전에 없었던 위협인식과 패권국으로서의 자존심 훼손과 무력감이 겹치면서 군사적 옵션까지 들먹이는 말폭탄으로 긴장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국내권력용이었고, 냉전적 진영논리를 기반으로 맹목의 친미신화와 무전략의 대중정책으로 일관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이래선 안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떠나지를 않는다.

국민의 힘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호구 신세를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촛불정부의 외교는 달라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에 비해 당면한 현실은 우리의 외교운신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정말 최악인가? 그렇다면 현 동북아 구도에서는 그냥 두 손 놓고 강대국의 힘자랑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북한의 핵보유를 향한 질주가 도를 넘을 정도라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친미강경의 외곬으로 반복하는 것일까?

아니다! 대외환경의 열악함을 백번 인정하더라도 외교력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북한의 도발, 미국의 압박, 중국의 제재 속에서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현재의 난맥상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문제핵심은 3가지인데, 현재의 위기에 대한 정확하고 일관된 인식의 결여,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비전이 담긴 어젠다와 이를 실현할 정책비전의 부재,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에 자신 있게 밝히고 협상할 담대함의 실종이다. 매일 몰려드는 현안에만 매몰되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외라는 듯이(?) 놀라고 일관성 없는 반응을 반복적으로 노정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한마디로 외교안보팀의 전문성과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속도가 빠르다는 것 외에 북한의 도발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어야 하는데, 진정성과 대화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북한에 대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분노한다면 그것은 상황인식부터 틀렸다는 말이 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대미정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워싱턴 보수정권의 오해 또는 프레임을 푸는 것에만 집중함으로써 처음부터 미국의 강경책에 끌려갔고, 군사옵션이라는 엄포에 놀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어젠다는 힘을 잃어버렸다. 한·미 공조는 오직 강경책에만 적용되어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순응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은 국내외 대화파에는 희망고문과 절망거리가, 강경파에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치열한 외교무대에서 선의로 대한다고 선의로 돌아오는 법은 없으며, 그것은 북한뿐 아니라 미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한·미 전략대화를 마친 후 미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찬자리에서 필자는 약간의 도발적 발언을 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문근혜’나 ‘도로 박근혜’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미국의 압박이 과할 경우 한국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번 정부는 보통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힘이 만들어낸 촛불정부임을 간과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양국 공조를 위해 한국의 책임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가 만들어내는 파열음의 해악부터 관리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결국 우리 문제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깊어졌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이미 두 번이나 국민의 강력한 추인이 있지 않았던가? 대선 승리와 초기 지지율 80%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높은 지지율에 매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심기를 어기면 죽을 것 같은 관성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자기 검열의 친미순응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북한이 우리를 의식하게 만들려면 미국과 중국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 이 말은 결국 북한 설득이나 한·미·일 공조가 우선이 아니라, 한·미·중 공조를 통해 미·중이 제재를 강화하고 한국이 대화의 유일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책에 편승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할수록 해결의 중요한 키를 가진 중국의 협력을 더욱 요원하게 할 뿐 아니라, 한·중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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