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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일이 힘든 것에 비해 급여가 적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두 번 무단결근의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이에 상응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그에 따른 징계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무단결근을 했다고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더욱이 고용관계도 아니라서 어차피 출근할 의무도, 출근으로 변제할 대가(월급)도 없는 관계였다면? 국가에 의한 강제노역 아닐까. 

이런 일이 지난주에 벌어졌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형사고발이 시작되면서 화물차주들은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밀려 다시 운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보수·진보 언론들은 차량유지비, 기름값을 빼고 월 500만원을 벌고 있는가, 200만원을 벌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건 핵심이 아니다. 월 500만원을 벌고 있어도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사처벌 위협을 받는 것은 제도 자체가 문제이다. 

업무개시명령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다. 미국도 1926년 철도노조법에 의해 철도와 항공 분야에서는 대통령이 긴급위원회를 구성하여 노사분규 중재안을 제출하면 총 60일 동안 노조는 파업을 중단해야만 한다.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지난 12월9일 미국 내 화물운송의 30%를 책임지는 철도노조의 파업 계획이 12월2일 의회의 결의안에 의해 무산되었다. 노르웨이는 산업분야 전반에서 정부가 노사분쟁을 중재하는 위원회를 발동시킴으로써 파업을 중단시킬 수 있다. 지난 7월에도 노르웨이 정부는 물가상승률보다 임금상승률이 낮다면서 파업을 계획했던 석유노조의 파업을 이렇게 막았다. 프랑스와 영국 역시 정부가 대체인력을 모집하여 ‘최소서비스 수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마침 영국은 올해 9월 관련 하위법령이 마련되어 철도노조의 파업에 적용될 계획이 발표되자 노조들이 위헌법률심사를 제기하였다. 프랑스도 10월에 주유소 노조의 파업에 대해 최소서비스 수준 유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외국제도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업무를 거부한 개별노동자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심지어 노조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제도가 유독 강제노역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납세, 병역도 아닌 어떤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하는 나라는 없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업무개시명령이라기보다 대체인력투입제도로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법적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또 우리나라는 근로계약상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소위 ‘사업자’에게까지 적용하도록 되어 있어 더욱 부당하다. 일해야 하는 의무를 방기한 사람들로 몰아가며 강공대응을 하고 있다. 사과값이 떨어져서 사과농사를 안 짓는 농부들도 처벌할 기세다. 물론 사업자들의 집단거래거절은 독점규제법상 ‘부당한 공동행위’로서 규제가 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 화물노동자들은 화주들의 요구로 지입차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여 근로자성을 인정해달라고 해왔고 대법원도 2013년, 2018년, 2021년 판결에서 이를 인정했고 올해에도 비슷한 고법판결이 나왔지만 정부는 계속 이를 외면해왔다. 정부가 적어도 근로자성이라도 인정해준 후에야 외국의 업무개시명령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의사처럼 국가가 신규면허자 숫자통제를 통해 일정한 독점이윤을 보장해주고 있는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제도와 화물운전자들에 대한 이번 명령은 경쟁정책상으로도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사 숫자가 적어 필수의료서비스들이 부족한 상황이다. 2020년 한의사를 포함한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국가 중(평균 3.7명)에서 두번째로 적지만 PPP 기준 연간 임금소득은 봉직의 19만5463.2달러, 개원의 30만3007.3달러로 모두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화물운전자를 사업자로 봐도 시장의 집중도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이며 위에서 설명했듯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화물운전자들의 근로자성 역시 큰 차이점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자 파업, 즉 집단적 노무제공거부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여 ‘강제노역죄’ 비판을 받아왔다. 유럽의 산업화 시기 노동운동 억제를 위해 만든 단결금지법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노조법을 어겼다면 노조법상의 불이익을 주면 될 텐데, 일 안 한다고 형사처벌까지 가하니 문제이다. 이제 정부 스스로 사업자라고 보는 화물운전자들에게까지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다. 산업은 결국 질 좋은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이 정부가 중요시하는 경제가 과연 강제노역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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