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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영국 동부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공장에 근무하는 여성 및 소녀 노동자 1000여명은 최초의 대규모 여성 노동자 파업을 단행했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노동과 저임금 및 벌금제도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계기는 성냥제조에 사용된 백린의 치명적 부작용 때문이었다. 백린은 턱이 괴사되는 인중독성 괴사(phossy jaw) 등 인체에 축적되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유해 물질이었다. 최근 개봉된 <에놀라 홈즈2> 영화가 바로 이 파업의 발단이 된 백린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질병에 걸린 여성은 장티푸스에 걸렸다고 비난하며 내쫓았고, 백린의 문제를 제기한 여성노동자는 신변의 위협까지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의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일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1888년 영국 성냥공장의 현실과 한국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지난 11월25일 급식노동자 920명이 동참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 파업이 있었다. 이것은 ‘요리 매연’에 의한 높은 폐암 발생률이 도화선이 되었다. 2021년 4월에 12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실무사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그해 말 전국 학교 급식종사자 건강진단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급식종사자 1만 8545명 중 무려 187명이나 폐암이 의심되거나 매우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것은 일반인과 비교해 무려 ‘35배’나 높은 수치였다. 이로써 요리 매연의 해로움이 밝혀졌지만,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만 나왔을 뿐 1년이 넘게 실질적인 개선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급식노동자의 파업 동참은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11월에는 급식노동자를 포함해 여러 파업이 동시에 단행됐다. 23일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가, 24일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가, 25일 급식노동자를 포함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가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섰다. 이를 두고 ‘생떼 같은 줄파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여당 측 정치권은 “대국민 갑질” “불법투쟁”이라 연이어 비판했고, 화물연대의 파업은 명분도 없이 국민을 볼모로 하는 불법적, 폭력적 행동으로 규정되었다. “민폐노총” “기획파업” “반노동”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들이 경쟁하듯 쏟아졌다. 미디어에서도 ‘몸자보’와 띠를 두른 파업 노동자들이 무력시위를 하는 듯 비춰지는 모습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파업 노동자들에게 ‘법 위에 군림’하고, ‘국민경제가 수조원 손실’에 이를지라도 안하무인이라는 무질서, 무법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혐오스러운 이미지들의 반복 속에 끝없이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피해자들은 빠르게 삭제되고 잊혀져 간다. 끼임사고로 사망하고, 유해물질로 사망하고, 과로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의 이미지들은 왜 그토록 휘발성이 강한 것일까. 현재 시점 한국 사회에서 파업 이미지가 덧씌워진 노동자의 얼굴은 마치 과거 반공교육 때 등장했던 뿔 달린 괴물이 겹쳐진다.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조너선 메츨은 1960·1970년대 미국에서 흑인 남성이 쉽게 분노하는 기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면서 조현병 환자의 공공연한 모델로 선정되었다고 말한다. 각종 조현병 약물 광고 속 흑인 남성의 얼굴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메츨은 이것을 ‘저항의 정신병(protest psychosis)’이라 불렀다.

즉,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의 목소리가 정신병 환자의 비이성적인 외침과 떼쓰기 정도로 치부된 셈이었다. 의학 저널, 언론, 광고,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당시 흑인의 이미지는 약으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정신병자처럼(실제로 정신병자가 아니라 밝혀진다고 해도)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믿어지게끔 만들어졌다. 그들의 있었을지 모르는 ‘미래의 위협’은 그렇게 미국 사회의 현실에 ‘영원한 실질적 위협’으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셈이다.

캐나다 출신 정치 철학자 브라이언 마수미는 이처럼 “했었을 것이다. 할 수 있었을 것이다”의 논리로 특정 세력의 위협을 실제로 만드는 것을 ‘이중 가정’에 따른 위협이라 부른다. 오늘날 한국 노동자의 잇단 파업에 각종 ‘혐오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도 ‘이중 가정’의 사회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이제는 지금처럼 파업 노동자를 억제하지 않았다면 국민을 볼모로 국가 경제를 파탄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사실처럼 믿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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