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판사와 검사들은 파업을 결의했다. 법복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행진을 하고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법조 파업 이야기다. 판검사들은 법무부 예산 감축에 항의하고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재정경제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쉬지 않고 50건의 재판을 소화하느라 몇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의 얘기를 단 7분밖에 들어줄 수 없는” 현실을 고발하고, 법원이 이 위험천만한 서커스를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사법부 노동자들과 판검사들이 함께 파업을 벌이는 것은 프랑스에선 드물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법전을 불태우는 ‘과격한’ 행위도 벌어진다. ‘자영업자’인 변호사들도 종종 이 파업에 가세한다.

프랑스는 파업하기 좋은 나라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저 판검사들의 파업과 지금 한국의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판사들의 파업은 자기 노동 현장의 실태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업무의 과로, 과속, 과적이 어떤 사회적 위험을 초래하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행위다. 수많은 이들의 인생과 운명을 가르는 판결이, 법리를 적용하여 판결문을 찍어내기 급급한 ‘판결공장’에서 이뤄질 때 그게 누구의 위험과 직결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화물파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노동자 한 명이 처한 위험은 시민 수천 수만명의 안전과 직결된다. 명명하자면 이것은 사회의 붕괴에 앞서 위험을 알리는 ‘카나리아 파업’이고, ‘막을 수 있는 참사’를 막기 위한 ‘사이렌 파업’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카나리아 목소리를 주로 노동자들이 담당했다.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 공격을 막는 데 가장 앞장서서 싸운 조직도 노동조합이다. 민주노총의 민영화(사유화) 반대투쟁은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수호하는 사회적 스크럼 역할을 했다. 화물연대의 파업구호도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이다. 이 구호는 사회권과 시민권, 노동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과로·과적·과속은 화물 노동자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의 삶에 얹혀 있는 불안과 고통의 이유이고 사회적 재난의 원인이며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이후 노동권 투쟁은 그 자체로 시민의 정치권과 사회권을 사수하는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다. 그중에서도 파업권은 노동권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 파업권을 분쇄하겠다고 천명하는 정부는 곧 노동권과 시민권을 박살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민을 공격하는 정부는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도 더 이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인사들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노골적인 노조혐오 선동을 쏟아내고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노조는 악’이요 ‘파업은 곧 불법’이라 여기는 우파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측근들의 무지와 억지의 소산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다른 한편에는 파업권을 두고 절대 양보도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자본의 결연한 계급적 의지가 있다. 노조의 파업에 따른 기업 손실액을 즉각 돈으로 환산하는(그 계산이 맞는지는 아무도 검증하지 않는다) 우파 경제지의 셈법은 그 의지를 정확히 반영한다(정부와 기업의 노조 파괴 정책이 노동자와 사회에 입힌 손실과 피해는 한 번도 셈해진 적이 없다).

영국에서 대처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기 위해 제일 먼저 탄광노조를 박살내야 했다. 가장 강력한 노조였기 때문이다. 석탄은 모든 산업을 멈춰 세우는 힘을 가졌다. 석탄이 멈추면 영국이 멈춘다.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자본주의는 물류가 움직였다. 물류가 멈추면 세계가 멈춘다. 나는 지금 정부·자본·언론 지배동맹이 화물파업을 결사 저지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멈춰 세우는 힘을 가진 것은 움직이는 힘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화물파업의 위력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이 힘을 합쳐 이렇게 노동권과 시민권을 필사적으로 억압한다면 노동자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파업하자. 파업 금지에 항의하며 파업하자. 파업을 고립시키려 한다면 동조파업, 지지파업, 연대파업으로 파업을 확산하자. 더 나아가 노조무력화법, 노조파괴법인 노조법 2조, 3조 개정을 위해 파업하자. 판사들의 파업은 공공부문에 대한 자본의 공격이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오늘 파업 금지를 용인하는 것은 내일 나의 파업권을 박탈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함께 파업하자.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1,789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를 구독하시면 새로운 기사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색 초기화

www.khan.co.kr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