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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오늘인 2016년 12월31일의 밤, 부산의 중심가에 있었다. ‘송박영신’ 제10차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그날 집회는 일본 영사관 앞에서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겸했다. 6만명의 시민과 민주노총 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이 부산의 간선도로를 메우고 행진했다. 그날 전국의 촛불집회는 저마다 타종행사와 새해맞이 축제를 겸했다. 거리에서 세모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사람들 마음의 흐름은 희망과 기쁨이었다. 사람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과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다. 영하의 거리도 춥지 않아 사람들은 함께 노래 부르고 많이 웃었다. 저마다의 개인적 소망과 공동체를 위한 마음이 교향곡처럼 된 자리였다.

그 사람들은, 또 그 마음들은, 지금은 어디에들 있을까? 4년이 지나 새해를 각자 집에 갇혀 맞아야 하는 오늘의 마음은 갈라짐과 갑갑함이다. 소위 ‘촛불혁명’에 편승하여(또는 편취하여) 출범했던 문재인 정권의 전도는 불안하다. 마음의 둑 한쪽이 부서져 나갔다. 아직 30몇%가 남았다지만 질이 나쁘다. 특히 20~30대 청년들 대다수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와 환멸을 가졌으니 더 안타깝다. 쉼 없이 지속된 ‘내로남불’과 화려한 수사와 따로 논 무능과 무위(이를 합쳐 ‘쇼통’이라 부른다) 때문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 ‘말’과 약속은 정말 믿기 힘들게 되었다.

장관과 참모 몇을 바꾸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되돌려질까? 지난 10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촛불혁명 4주년’ 토론회에서 촛불의 한계와 문재인 정부의 ‘공정’ 담론에 대해 비판한 뒤, 나는 도리어 어느 젊은 연구자로부터 나무람을 들었다. ‘뭘 그리 큰 기대를 했느냐? 그런 과한 기대야말로 당신네 586들의 착각이나 판타지 아니냐’는 요지였다. 그의 쿨한 지성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럼에도, 4월에 혁명이 있었으나 유달리 배고프고 춥던 1960년의 겨울처럼, 민주정부가 10년 차가 된 2007년의 가을처럼, 민주당 정권의 실패 뒤에 찾아온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이 2021년의 마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디서 툭 박정희나 이명박 같은 간교하고도 담대한 참주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권이 실질적 개혁성과를 내고 ‘연착륙’하기 바란다. 조폭을 연상시키는 소위 ‘검사동일체’의 관행·멘털리티와 검찰의 독점 권력이 가루처럼 부서져버리길 바란다. 법조 엘리트의 카르텔과 보수언론의 담론 장악력이 깨져버려야 한다고 믿는다. 민주시민치고 동의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럼에도 ‘검찰개혁’의 노력은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힘을 지혜롭게 써야 가능한 일일 텐데, ‘조국 사태’ 이후의 거듭된 오판과 독선이 시민사회를 갈라버렸다. 합리적 이성과 성찰능력이 깨져버린 극렬 지지자들은 세를 이룬 채, 보통의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들만의 감정과 프레임에 몰두해왔다. 그들에게 전 법무장관들은 예수이고 잔다르크란다. 과거(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패한 애도’가 현재와 미래에 마구 투사되고, 자기들끼리의 ‘좋아요’에 터널비전에 빠진 듯 민심도 자신도 돌아보지 못하여 ‘마이너스 정치’로 질주한다. 그들이 강경하게 뭉칠수록 시민의 염증이 커지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경고가 내부에서 나오지만 멈추지 못한다.

기대를 배신당하고 또 극렬 지지자들에게 모욕과 언어폭력을 당해본 많은 시민과 식자들은 날 선 언어로써 정권을 비판하고 저주하는 데 마음의 에너지를 쓰기도 한다. 분심을 다 이해하지만, 그 마음씀이 안타깝고 아깝다. 비판이 곧 대안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점도 헤아릴 때가 오고 있다. 비판이 강요되는 진영 논리를 넘어, 시민들이 진정한 진테제(syntheses)를 찾아나가는 데 생산적으로 쓰였으면 한다. 물론 그 새로운 정치의 대안은 아둔하고 우파적인 ‘중도’와 무관하다. 대안적인 힘은 여당의 주변부에서 나올 수도 있고 진보정당과 다른 제3의 섹터에서 찾아질 수 있어야 한다. 한국판 샌더스와 AOC를, 2002년 버전의 노무현을, 2004년 버전의 노회찬들을 발견하고 키우는 일이 절실하다.

그리고 지치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젊은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더 정성 들여 대화하고 그들로부터 배우고, 지금도 하루하루 개미처럼 일하다 부서지는 사람들을 위한 진지를 만드는 데 쓰고 싶다. 그런 마음이고 싶다.

또다시 ‘의지로써 낙관’해야 하는 12월31일이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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