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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가 문제를 일으킨 데 이어, 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이런저런 리스트가 있다고 시비가 일자, 공무원들 사이에 ‘일을 열심히 하면 직권남용죄, 무서워서 아무 일도 안 하면 직무유기죄’라는 탄식이 돌았다는데, 과장이다 싶으면서도 한편 걱정스럽긴 했다. 어디까지가 남용이고 어디서부터는 남용이 아닌가. 공무원이 권한을 행사하여 남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남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직권남용죄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겉으로는 권한 내의 행위 같지만 실은 의도가 불순한 행위를 말한다. 권한 밖의 행위는 직권남용죄가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세무공무원이 세무조사를 나가 몸수색을 하면 직권남용죄가 아니라 불법수색죄가 된다.

일전에 대법원이 김기춘 등의 직권남용죄에 관해 내린 판결은 직권남용죄의 적용범위를 좁혀 놓았다. 이 판결엔 다수의견, 반대의견, 별개의견, 보충의견이 붙어 있고 분량도 80쪽에 이른다. 

이 판결은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 전원이 합의에 관여한 전원합의체에서 나온 것이다. 그중 별개의견은 특정 문화예술인·단체를 기금 지원 선별 대상에서 배제한 것이 위헌적이거나 위법하다고 평가된다고 하여 바로 직권남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렇게 평가하면 직권남용죄의 해석범위가 과도하게 확장된다는 것이다. 다른 별개의견은 수사권이 없는 대통령비서실에서 수집한 증거를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쓰는 것은 정치적 중립에 위배되고, 이런 일이 허용되면 향후 정치적 보복에 악용될 수 있으므로 그렇게 위법한 증거의 증거능력은 부정하여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이와 달리 다수의견은 문체부의 지원 배제 조치야말로 정부의 정책이나 노선에 배치된다는 정치적 이유만으로 대상자에게 불이익을 준 것이니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또 공무원은 범죄가 있을 때에는 고발할 의무가 있으므로 대통령비서실에서 제공한 증거를 위법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소수의견(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은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그 논리도 잘 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법원의 공식 견해인 다수의견의 판시범위를 가늠하게 하고 판결의 논리적 정합성을 유도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또 소수의견은 어느 사회의 이념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치적 중 하나는 전원합의체를 실질적으로 활발하게 운영한 것이다. 새만금 사건을 시작으로 <PD수첩>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건이 전원합의체를 거쳤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다양한 사법철학과 법리가 개진되었다. 그러다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엔 소수의견이 나올 법한 사건에서도 전원일치 의견의 판결이 선고되어 법조계에 실망 내지 분노를 안겨준 일이 있었다. 키코 사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사건,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사건 등이 그렇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휴고 블랙 대법관은 1942년 베츠 사건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냈다가 21년 후인 1963년의 기드온 사건 판결에서 베츠 사건 판결을 뒤집는 다수의견을 집필하였다. 판결 선고 후 그는 살아생전에 이런 일이 있을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대법원이 1977년에 내린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한 마리 제비로는 능히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 소수의견은 판사들에게 법치와 인권을 가르치는 교시문이었고 일종의 청량제이기도 했다. 1979년의 계엄포고위반죄 사건에서 군법회의 재판권에 관하여 소수의견을 낸 이일규 전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헌법정신에 눈을 뜨지 못하여 헌법적 감각이 무딘 점을 통탄할 따름이다”라고 썼다. 판결에서는 이 정도도 격한 언사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의 대법원 판결이 여권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묻지 않게 하려는 시도라는 둥,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둥 정치적 해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판결문을 다 읽어 보면 그런 말이 별 근거 없는 추측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모두 직권남용죄의 적용범위를 좁히려고 긴 해석론을 펴고 있다. 


법은 언제나 양날의 칼이다

칼의 임자라고 해서 그 칼을

빼어드는 게 꼭 능사는 아니다

혹 빼어들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베어야 하는 것이 칼이다


두 의견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법은 늘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칼의 임자라고 그 칼을 빼어드는 게 꼭 능사는 아니다. 혹 빼어들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베야 하는 것이 칼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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