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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작을 때 처리하지 않다가 막바지에 이르러서 큰 힘을 들여야 해결됨을 이르는 말이다. 뒤늦게 가래로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지금은 가래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논란과 파장이 걷잡을 수 없다. 미적대다가 때를 놓치고 사태를 수습하려다 거짓말까지 들통나 정의와 신뢰의 상징이어야 할 사법부 수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법원 내부의 불만도 만만찮다.
대법원장 사퇴하라는 야권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거짓 해명보다 미온적인 태도가 더 문제다. 사직을 받아주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탄핵감이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탄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바깥에서 탄핵하자고 설치고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소극적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시민사회와 국회에서 탄핵 논의가 시작되었으니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고 또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으로부터의 거센 공격을 방어하는 것임에도 마치 눈치 보기라는 오해의 빌미를 준 것이다.
호미로 막았으면 이렇게까지 번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호미로라도 막을 일이 아니라는 안이한 인식이 더 문제였는지 모른다. 법관 징계, 특별재판부 설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공개 등 사법농단 사태 해결에 대한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요구에 응답이 없었다. 사법농단의 과거를 청산하고 사법개혁으로 나가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법관대표회의에 내맡기고 국회에 떠넘기니 헌정사상 첫 법관탄핵 심리라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징계결정문에는 “법원에 계속 중인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절차에 개입하여서는 아니 됨에도”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1심 판결문에도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진행을 유도하는 재판 관여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그저 꾸짖어 타일러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정도로 끝냈다.
법관징계위원회는 손이 안으로 굽었던 것임이 틀림없다. 정직도 아니고 감봉도 아닌 견책이라는 솜털 같은 징계에 그쳤다. 사법농단에 관여해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법관들에게 가장 중한 징계가 정직 6개월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도 2차 징계위원회는 감감무소식이다. 기소되어 재판받는 전·현직 법관들에게는 거의 예외 없이 무죄선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법농단의 책임자 처벌 진행 상황은 이렇듯 미흡했다. 수장과 사법부 전체가 사법농단 사태를 바라보는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탄핵당할 정도의 위법이 견책에 머물렀으니 징계 수준과 재판 결과에 실망한 여론이 탄핵의 명분을 얻은 것이다. 재판개입 행위가 반헌법적이라면서 직권남용은 무죄라는 감싸기 판결이 탄핵의 도화선이 되었다. 봐주려고 고심한 흔적의 판결이 호미로 막았어야 할 것을 가래로 막게 했다. 물론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니 남용도 없다는 형식논리는 흠잡을 데 없다. 그러려면 법관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인 행위라는 판단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헌법 위반이 하위법인 형법에는 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납득할 시민은 없다. 여러 갈래 면죄의 길이 법관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늦었지만 입법부가 사법부에 견제구를 제대로 날린 것이다.
국회의 탄핵소추가 법관 길들이기라고 보수언론과 야당이 비판하지만, 헌법에 충실하도록 길들이기에 헌법이 작동한 것이다. 사법의 독립을 건드리려는 내외의 불순한 시도에 흔들리지 말라는 헌법의 경고다. 국정농단 사태가 헌법의 잣대로 마무리되었듯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사법농단 사건이 헌법적 심판으로 마무리되고 사법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결집한 결과다.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아 국민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입법부의 권한이자 책무다.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린 것 자체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되살아났듯이 헌법 질서가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일시적으로 감싸고 덮어주기로 위법과 반헌법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임을 확증했으면 좋겠다. 사법 불신의 정점인 사법농단을 단죄함으로써 사법 신뢰의 싹이 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의 심판만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난 3년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사법개혁의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해야 내외의 불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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