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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 과정에서 휴대전화 잠금 해제를 강제할 수 있는 법률안(일명 ‘한동훈 방지법’)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헌법 유린이라는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피의자에게 방어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논거다. 언론과 시민단체, 말 깨나 좀 한다는 사람들이 인권옹호자가 되어 공격대열에 합세했다. 장관의 지시에 침묵만 지키는 민변 출신 여당 국회의원들을 향해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는 전직 국회의원도 있었다. 국민의힘은 “헌법도 보이지 않는 법무부(法無部) 장관, 오로지 ‘내 편’만을 위한 인권”이라는 논평을 냈다. 평소 인권에는 관심도 없거나 애써 외면했던 이들조차 맹비난에 가세했다. 차라리 고문을 허하라는 극단의 비판도 들어야 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똑같아야 할 기본권이 상대를 공격할 때만 꺼내 드는 전가의 보도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반대로 차별금지법안은 실종된 지 오래다. 무수히 죽어 나가도 여전히 관심 밖인 노동자의 기본권은 어떠한가. 이럴 때는 인권이고, 저럴 때는 악법이라며 앞뒤 다른 말을 내뱉는 이들이 가소롭다.
피의자가 형사절차상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을 침해하면 증거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진술거부권, 자백 강요 금지, 영장주의, 적법절차, 무죄추정의 원칙 등등. 거대 권력에 맞닥뜨린 피의자의 방어권은 그가 검사장이든, 살인자든, 강간범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어낸 진실과 정의는 색바랜 진실과 정의다. 그러니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분명히 적혀 있는 원칙을 무시하는 법무부 장관의 법률안 검토지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수사 방해를 포함한 사법방해죄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요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무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적이 있다. 진보적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은 이명박 정부가 사법방해죄를 도입하려던 당시부터 검찰이 수사피의자의 방어권을 무력화하고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지금 소위 휴대전화 비밀번호 방지법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은 사람들은 그때는 어떤 태도와 입장이었을까. 그때도 언론이나 당시 여당 의원들이 이렇게 벌떼처럼 공격했을까. 국민의힘 논평처럼 “헌법에 보장된 진술거부권, 형사소송법상 방어권을 무너뜨리는 반헌법적 발상, 헌법과 국민 위에 군림하는 법무부 장관”이라는 비판의 한 조각이라도 들렸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국민의힘에 소속된 국회의원 중에 법안을 발의한 자도 있었다. 이에 동조했던 언론도 부지기수다. 이제 와서 마치 인권옹호자가 된 양 호들갑을 부려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맘에 들지 않는 상대라면 이전에 뭐라 했는지, 어떤 태도와 입장이었는지 상관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진술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도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의 사법방해죄 도입에는 침묵하거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공격의 대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그때는 그랬다고 지금은 달라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때는 사법방해죄의 찬성론자였지만 지금이라도 변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왜 달라졌는지는 말해 줘야 한다.
사법방해죄, 법무부의 숙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 DNA가 남아 있는 것인지 자유와 인권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는 이번 정부의 법무부도 예외는 아니다. 당위와 이상보다는 현실이 앞서게 되는 모양이다. 수사의 편의와 효율성이 우선인 듯하다. 진실발견이 형사소송의 최고 목표라지만 헌법에 쓰여 있는 형사사법상의 기본권이 지켜지는 절차에 의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도 적혀 있다. 디지털시대에 과학수사 기법이 필요하다지만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수사의 효율성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진실발견이 급해도 피의자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야 하는 것이 법치국가원리다. 외국에도 있다는 사실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선진국의 법제라고 모두 타당하거나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선진국 중에는 인권 후진국도 있다. 어느 국가나 받아들여야 하는 보편적 인권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기본권은 때와 장소,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면 더는 기본권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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