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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 울고 싶은 날씨. 운다고 봐줄 날씨(氏)가 아니다. 그이도 저 넓은 공중을 어찌 혼자 감당하겠는가. 추위든 더위든 나에게 와닿는 이 마지막 정황을 보이지 않는 그 양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겠다. 최근 궁리에서 펴낸 책의 역자 소개의 한 대목을 소환해 본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 라고 생각한다”(노승영). 그뿐이겠는가. 작년에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이 세상이 더워지는 것과 무관치 않으리라.
그림ⓒ이해복
아주 오래전, 한반도가 빙하기였던 때 북방계의 식물들이 한반도에 대거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지구온난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모두들 북으로 돌아갔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은 지리, 설악, 한라 등 고산지대의 꼭대기로 피신했다. 백두산 근처의 흔하디흔한 나무들이 남한에서는 높은 곳에서만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는 까닭이 이런 내력에 근거한다. 유례가 없는 올해의 더위 속에서 그 꼭대기 식물은 아무리 몸을 낮춰도 하늘로 옮겨갈 수는 없다. 이제 또 어디로 쫓겨나야 하는 것일까.
꽃들이 생존압력에 직면한 것처럼 폭염에 눌린 사람들의 마음도 최고치를 경신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앞세우고 낯선 경지를 체감해야 했다. 이윽고 더위야 물러나가기는 하겠지만 식물들이 산꼭대기로 간 것처럼 그 마음들은 어느 곳으로 도피했던가. 그 도망갔던 평상심은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자신도 짐작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예전보다 더 빨리 끓고 더 낮은 온도에 얼굴을 붉히는 마음의 생태계로 변한 건 아닐까.
당분간 비 소식이 없다는 뉴스를 듣다가 강원도 쪽의 하늘을 보면서 선자령 근처에서 본 제비동자꽃을 떠올렸다. 이름에서부터 사람 냄새가 물씬 나기에 그 안부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높은 산 습지에 아주 드물게 자라는 귀한 꽃, 제비동자꽃. 꽃잎 끝이 제비 꼬리처럼 날렵하게 갈라지고 긴 대궁 끝에 한 문명을 이룩한 듯 오묘한 세계를 얹어두었다. “발목에 찰랑대는 물기를 잃어버리고 갈 곳 몰라 허둥대는 제비동자꽃의 찢어진 꽃잎에 지칠 대로 지친 8월의 마음을 착잡하게 얹어둔다.” 제비동자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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