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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나이는 거꾸로 먹더라도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
화해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자

약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편안한 사회를 가꾸어 보자

내년부터는 ‘만 나이’ ‘세는 나이’ ‘연 나이’로 다양하게 사용되던 한국의 나이 계산법이 법적으로는 ‘만 나이’로 정비된다고 한다. 개인이 제 편한 대로 사용하는 것까지 규제할 방법은 없으나, 많은 시민들이 이 기회에 ‘만 나이’로 통일해 사용할 분위기다.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곧 다가올 새해가 되자마자 바로 한 살이 늘어나는데, ‘만 나이’로 계산을 바꾸면 오히려 한 살이 줄어든다. 덕분에 나도 50대 중반의 나이에 머무르게 되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제 나이에 0.7을 곱해야 실제 나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의학의 발전과 생활의 개선에 따라 사람이 잘 늙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60세가 예전 40대 초반의 모습과 건강을 가지고 있다는 게 과장이 아니다. 어렸을 적 벽에 걸려 있던 할아버지 사진이 기억난다. 갓을 쓰고 흰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는데,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철도 늦게 드는 것 같다. 나 자신은 물론 주위의 또래나 선배들을 살펴보면, 예전 사람들보다 자유로운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하고, 대책 없이 계속 저러고 살아도 되나 싶기도 하다. 

옛사람과 비교하여 건강한 것은 물론 지식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늘었지만, 더 지혜가 충만한지는 모르겠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세상의 큰 이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허둥지둥 떠밀려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도 삶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성인들의 가르침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다. 왕자로 태어나 부족함을 모르고 살던 석가모니는 성 밖에 사는 사람들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사는 것이 모두 괴로움인데, 그것은 온갖 집착 때문이며, 그러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얻는다고 설파한다. 만물과 현상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나’라고 할 것이 없으므로, 순간에 얽매여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나아가서 자신이 가르친 진리마저 내려놓고, 그냥 저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가르친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대부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무리 집착을 버린다고 한들, 질병과 죽음의 고통, 그리고 가난의 괴로움은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현대과학은 질병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사회시스템은 가난의 괴로움으로부터 우리를 차츰 해방시켜주고 있다. 헛된 욕망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각별한 정진 없이도 한 세상 무난히 건너갈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는 무슨 말을 했는가. 그가 일으켰거나 그를 둘러싼 기적을 믿고 말고는 각자의 몫이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고, 그 시대의 신화로 받아들여도 된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 ‘신에게 자신을 내어주라’는 가르침은 아집과 욕망에서 벗어나라는 부처의 깨달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들린다. 끝없이 가지고 싶고, 멋진 누군가가 되고 싶으며, 더 높은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말씀들이다. 그 바람들이 헛됨을 이해한 후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나는 제멋대로 그렇게 해석해 본다. 또 다른 성인과 현자의 가르침들도 그런 정신과 맞닿아 있다. 우리 불행의 대부분은 무지와 욕망에서 오는 것이고, 자신과 자신 아닌 것의 구별을 뛰어넘는 것이 진리와 행복의 황금률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리를 이해했다고 하여 마음의 평화를 항상 이루지는 못하기에, 꾸준히 기도하고 자기를 닦아야 하는 것이리라.

20세기, 21세기는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던 시대다. 22세기가 되면 또 어떤 신기원이 열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특별하다. 성자들은 인류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채 직관으로 삶의 본질을 꿰뚫었지만, 지금은 정규교육과정을 마치면 현대 과학이 알아낸 지식의 정수를 공유하게 된다. 세계와 우주의 비밀이 해결되었거나 해결되고 있고, 계속 빈 칸들을 채우는 중이다. 설령 우리가 여전히 과학적 무지에서 살아야 하고, 성자들이 우리를 잘못 인도하는 것이라 해도 괜찮다. 우리가 왜 꼭 모든 이치를 파악하고, 지혜의 정점에 이르러야 하는가. 그런 열망 자체가 오만이다.

이번 새해에 비록 나이는 거꾸로 먹더라도,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 타인은 물론 자신과 화해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아프거나 가난한 이가 조금이나마 더 편안해지는 사회를 가꾸어 보자. 이곳에 살아가는 모든 이의 건강과 평안 그리고 마음의 고요를 기원합니다.

<조광희 변호사>

 

 

연재 | 조광희의 아이러니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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