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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이른바 ‘독사파’다. 1969년 1명만 선발하는 유학시험에 합격해 서독 육사를 졸업했다. 생활비가 모자라 번듯한 식사 한 번 못했다고 한다. 당시 서독의 탄광 막장과 병원에서 일하던 광부·간호사들도 신산한 삶을 이어갔다. 고된 삶은 당대 한국인 모두의 숙명이었다.

군을 아는 몇 사람에게 군인으로서 김 전 실장의 평판을 물었다. ‘카리스마 있는 지휘관’이란 평가가 다수였다. 야전 지휘관과 작전, 전략 등 거의 전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고, 합리적 사고와 강력한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였다. 국방장관 취임 직후인 2010년 말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 출사표를 인용한 ‘장관 지휘서신 제1호’를 장병에게 보낸 것이 화제가 됐다.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내용으로 군의 수장다운 기백을 보였다는 말도 있었지만 봉건시대의 충성심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직선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관운이 좋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다. 관사에서 짐을 다 빼냈다가 유임 통보를 받고 다시 짐을 들여놓는 촌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국방장관 재임 3년6개월은 해병대 총기난사와 북한군 노크 귀순 등 나라를 뒤흔든 6건의 대형 병영사고로 얼룩졌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그중 1~2개 사건만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을 법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사이버사령부의 민간인 동향 파악 및 대선 댓글 공작이 시작된 것도 장관 재직 때 일이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유야무야된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도 관여했다. 정치군인이 된 그가 국가안보실장으로 승진한 것은 대한민국에 비극이었다. 그가 안보실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개성공단 가동 중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조기 배치 등 동북아 정세와 국가안보상 중대한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국가안보는 악화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 5월 5일 김관진 캐릭터 (출처:경향신문DB)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와 정치적 감각이 필요한 자리다. 그는 그런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1월 “중국이 반대해도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공개 발언한 것이 좋은 사례다. 중국으로서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중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정상 간 교분은커녕 비상시 전화통화마저 여의치 않다. 경제보복은 심화됐다. 사드 배치에 앞서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측했는지 의심스럽다. 사드에 대한 맹목적 믿음 하나로 우직한 군인처럼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역량으로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드 조기 배치는 무모한 일이었다. 당초 2017년 9월로 예정된 사드 배치 시점을 5월로 바꿨다가 최종적으로 4월26일로 두 차례에 걸쳐 앞당겼지만 실익은 거의 없었다. 군사적 실효성은 여전히 의심스러웠고, 변덕스러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음을 사지도 못한 듯하다. 북핵 위협은 더 심화됐고, 국내 여론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애초 사드는 교환가치가 높은 외교 자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사드 문제를 주변국과의 협상 카드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가장 낮은 가격에, 아니 사실상 거저 넘겼다. 심각한 국익 손상 행위다.

김 전 실장의 사드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유난스러운 대북 적대감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군 지휘관과 국방장관 시절 그는 ‘도발 원점 타격’ 등 북한군에 대한 강한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장관 서신에서 ‘원수’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그런 인식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분석이지만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야 북한을 적으로 보는 게 당연하지만 외교까지 고려해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은 때로 증오를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 자칫하면 국익은 물론 당사자도 해칠 수 있다.  

김 전 실장의 어두운 그림자는 외교안보에만 드리워져 있지 않다. 청와대는 그가 세월호 참사 부실 구조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국가위기관리지침을 고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제처 허가 등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빨간 볼펜으로 지침 원본에 줄을 긋고 필사로 수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저지른 국정농단과 불법적 행태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 전 실장은 빚만 가득한 ‘불량 유산’을 남겼다. 통상 질 나쁜 유산은 법원에 포기 각서를 제출하면 거부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그럴 수 없다. 정부와 시민이 오래도록 엄청난 고통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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