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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탄핵심판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든 지난 6일, 사드 발사대 등 일부 장비가 전격적으로 오산 미군기지에 들어왔다. 2월27일 롯데가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국방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한 이후 사드 배치는 속도를 내었다. 그러자 탄핵 인용 당일인 10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과거 정부의 그릇된 외교안보 정책을 즉각 동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한·미가 계획한 대로 가급적 2개월 안에 사드 배치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당초 금년 말로 예정되어 있던 사드 배치를 대선 예정일인 5월9일 이전에 끝내겠다는 뜻이다.

도대체 정부는 왜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것일까? 이렇게 서둘러 사드를 배치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소한 북핵을 방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답은 ‘둘 다 아니다’이다. 무기체계로서 사드의 성능 자체가 신통치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핵 문제 발생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가 포착되고 있지 않은가. 사드 배치는 남북 간 군비경쟁을 불러올 뿐이다. 더구나 사드 배치는 “북한은 핵보유국”이라는 김정은의 주장(2016년 5월 7차 노동당대회)에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된다.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가 화풀이하듯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떠나면 우리는 앞으로 더 이상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할 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8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지난 6일 사드 발사대 2기와 일부 장비를 싣고 온 것으로 알려진 C-17 수송기(왼쪽)가 활주로에 서 있다. 이상훈 기자

임기가 두 달도 채 안 남은 현 정부가 이렇게 졸속으로 사드 배치를 서두르면 안된다. 차기 정부가 사드 문제를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떠나야 그나마 후일 역사적 비난을 덜 받을 것이다. 그럼 정부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사드 문제를 두 달 후에 출범할 차기 정부로 넘긴다면 해법은 있는가? 이와 관련해 우리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월7일의 세미나와 3월9일의 라디오 방송에서 제기한 사드 문제 해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월7일, 송 전 장관은 “사드와 북한의 핵·미사일을 묶어 해결하는 협상의 과정을 한국이 먼저 고안해야 한다”면서 “일차적으로는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핵·미사일 실험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등 북핵 문제의 진전에 더 큰 역할과 책임을 지게 하고, 미국과는 사드 배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3월6일 밤 사드 발사대 일부 장비가 전격적으로 들어온 뒤인 9일, 송 전 장관은 “중국이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X밴드 레이더가 아직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점에 한국이 미·중에 명분을 주면서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런 계기가 없는 상황에서는 미국도 중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미·중에 명분을 주면서 사드 배치의 원인이 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앞장서서 풀어나가야 한다.

사드 문제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전면 반대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수용하는 후보도 있다. 사드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후보도 있다. 그런데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후보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장차 누가 사드 문제 해결책임을 맡게 될지는 모르지만, ‘핵-미사일-사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6자회담을 열도록 선도하면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중국이 우리에게 가하는 경제보복부터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미동맹도 유지하면서 북핵 문제도 해결하는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드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겨 국민동의 절차도 밟고, 밖으로는 미·중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핵-미사일-사드 일괄 협상’을 하는 6자회담 개최를 선도해 나가면 북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이 방안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병행’을 제안한 ‘왕이(王毅) 이니셔티브’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중국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도 중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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