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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올해 초 몇 달 사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부터 타오르던 불길은 캘리포니아 호화주택까지 태워 간담을 서늘케 만들더니, 털이 그을린 코알라며 캥거루들로 눈시울을 적시게 한 호주 산불이 잦아들기도 전에 코로나19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얼어붙은 마음이 환호로 뒤바뀌는 중이다. 숨차다. 심장이 널뛰는 가운데 몇 가지 두서없는 통찰이 있었다.

화마가 덮친 브라질 북부 파라주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8월 26일 재와 연기로 뒤덮여 있다. AP연합뉴스

첫째, 사람도 동물이구나. 그런데 대체로 망각하고 산다. 코로나19는 동물을 매개로 전염되었고, 이는 메르스, 사스 등 대규모 전염병들의 공통점이다. 사람과 동물의 감염병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것은 사람, 동물,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데 나 혼자 건강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왜 자꾸 잊게 되는 걸까? 긴급구호전문가이자 작가인 한비야는 지구촌이 아니라 ‘지구집’이라고 강조한다. 나도 박쥐도 젖소도 소나무도 한집에 사는 식구라는 걸 바이러스에게 새삼 배웠다.

둘째, 지구온난화의 재앙이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구나. 과학자들은 신종 코로나가 악몽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인체는 병원성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체온을 올려 대응해왔다. 높은 온도에서 바이러스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이 병원균들도 높은 온도에 적응하게 되어 우리 면역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고, 백신마저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북극의 영구동토 아래 잠자고 있는 미지의 병원균, 밀림 속에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병균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는 건 영화 속의 좀비가 문밖에 서 있는 꼴이다.

셋째, 봉준호의 저력은 혼자 있는 시간에서 나왔구나.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즉각적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 시간은 빈둥거림으로 죄악시돼 왔다. 그러나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무리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고, 중요한 순간일수록 혼자가 되라고 했다. 격리가 아니라 성찰과 몰입의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리라. 텅 빈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면 타인의 목소리, 특히 큰 목소리에 가린 힘없는 이들의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다른 말로 하면 공감의 시간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친 영화판에서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기억하고, 밥때를 놓치지 않으며 노동력에 정당하게 보상하는 ‘착한 거장’이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아카데미 수상소감은 호아킨 피닉스가 더 멋있구나. “우린 자연과 많이 단절돼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갖고 있고, 우리가 우주 중심이라 믿고 있죠. 우린 자연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을 침범하고 착취하죠. 우린 소를 인공임신시킬 권리가 있다고 느끼고, 어미의 울부짖음에도, 송아지를 훔치며, 송아지 몫인 우유를 가져다 우리의 커피와 시리얼에 넣죠.”(목수정 번역)

봉 감독 덕분에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100년 만에 폭설이 내릴 정도로 기후변화 좀비들은 지구집 창가에 어른거리고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코로나19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들과 치료에 헌신하는 ‘지구집 식구’들의 쾌유를 빌어본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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