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 매출이 100만원 가까이 줄었다. 9평짜리 작은 편의점엔 큰 타격이다. 편의점주 카페에선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하락에 야간영업 중단, 임금 보조, 신선식품 폐기 지원 등 본사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다. 야간 알바생 둘의 월급을 빼고 나니 하루 15시간씩 도는 가족들의 시급은 3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프랜차이즈 계약이라 휴업도, 폐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버티는 것만이 최선이다.

이미 코로나19의 여파로 여기저기서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를 휴·폐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회가 서서히 마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물리적 거리 두기는 더욱 치명적이다. 우수한 의료자원과 시민들의 협조 등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국의 명성은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지만, 그 사이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저 필요한 조치임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견딜 뿐이다.

본사에서는 물류비용을 효율적으로 개선한다는 이유로 세 번에 나눠 보내던 물건을 한 번에 전부 쏟아놓고 갔다. 혼자서는 정리할 수 없는 양이 작은 가게를 가득 채웠다. “이걸 어떻게 한 번에 다 정리하라는 거예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울상 짓는 기사님에게 말해본들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화가 난다. 물건들로 입구를 막아놓고 어떻게 장사를 하라는 건지. 며칠 전 본사에서 보낸 ‘우리 함께 코로나19를 극복하자’는 홍보물이 생각났다. 우리 함께 극복하자고? 대체 그들이 말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수고하세요.” 

교대하러 온 야간 근무자분께 새 마스크 한 장을 챙겨드리며 가게를 나왔다. 퇴근길에 있던 국밥집 입구엔 ‘당분간 개인 사정으로 휴업합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종이 위에 써 있었다. 늘 같은 전자담배를 사가는 곱창집 사장님은 웬일로 바깥 의자에 앉아 끊었다던 연초를 태우고 있었고, 그 옆의 왁자지껄하던 생맥줏집은 불빛만이 조용히 반짝였다. 항상 주차할 자리가 모자라던 갓길은 텅 비어 있었다. 비로소 우리가 거리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작은 가게가 휴업하면 일자리 두세 개가 사라진다. 폐업이라도 하면 어제의 사장은 오늘의 백수다.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 임대료는 없으니까. 빚이 있으면 상황은 더 끔찍해진다. 일손이 모자란 물류센터에 가서 택배라도 옮기면 다행인데, 이젠 그것도 젊고 힘 좋은 사람들이 먼저다. 카드값, 통신비, 대출금 같은 것들은 기다려 주지 않고, 잠에서 깨면 허기진 배가 원망스럽다. 하루하루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빚에 허덕여 죽나, 병으로 아파 죽나, 굶어서 죽나. 무엇을 고르든 비극이다.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시로 청소를 한다. 주기적으로 하는 관공서의 방역소독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거리의 사람들만 최선을 다해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희망을 얻기 어렵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들이 손톱 다 깨져가며 피투성이로 버틴다 한들, 손 내미는 이 없이는 결국 추락할 뿐이다.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고위 공직자들이 고통 분담의 의미로 월급 일부를 반납했다. 미담은 될지언정 효과적이지 않다. 지금은 시장에 수요를 일으켜야 한다. 재난기본소득, 세제혜택, 위생용품 지원, 정기소독 및 안내, 로열티와 임대료의 할인, 의무영업시간의 완화, 대출과 금융문제에 대한 연기와 같은 구체적인 정책이 도움이 된다. 특히 국민 다수에게 소비용 체크카드나 지역상품권을 제공하고자 하는 최근의 논의는 무척 바람직하다고 느껴진다.

정부와 기업의 최선이 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마스크 끈에 쓸린 귓등이 따끔거렸지만 꽉 조여 매며 다시 청소를 시작한다. 우리의 노력이 일상으로 돌아올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하게 느끼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박진웅 | 편의점 및 IT 노동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