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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에 투자해서 몇 년치 연봉에 육박하는 수익을 얻었다는 지인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조바심을 느꼈다. 내가 혹시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수년간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고, 매입한 주택 가격은 나날이 올라 소유주의 자산 증식에 크게 기여했던 시기가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시대에 살아본 적 없으므로 구전설화처럼 느껴질 뿐이다. 현재 젊은 세대는 밥 먹고 월세 내고 학자금 대출 갚고 남은, 그 한 줌의 돈을 다달이 저축해도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을 얻기 어렵다.
나아지기는커녕, 2년 동안 저축해도 집주인이 올려달라는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충당하지 못해 더 열악한 조건의 공간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크다.
물론 부모가 재력가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한국 재력가 대다수는 매입한 부동산 가격 상승 덕을 봤다. 고통스러운 일상을 사는 청년에게 ‘왜 내 부모는 그 시대에 그 아파트 안 샀을까…’와 같은 원망의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이유다. 이런 현실인식은 내게 (만에 하나 자식을 낳는다면) 머리 굵어진 자식이 ‘왜 엄마는 그때 비트코인 안 샀어?’라고 원망하는 모습을 상상하게끔 하는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일생일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인식과 조바심. 가상통화 투자자 300만명 중 절반이 20~30대 청년층으로 집계된 배경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정서를 공유했고, 많은 유혹과 번뇌에 휩싸였다. 그러나 나는 ‘존버(X나 버티기)’하지 못할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발을 담그는 순간 느낄 더 큰 번뇌와 고통, 불안이 뻔히 예상되기에 가상통화 거래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왜 그때 가상통화 안 샀냐고 원망할 자식을 안 낳으면 될 것 아닌가!
가끔 스스로를 돌아본다. 재테크에 무심한 내가 너무 대책 없이, 바보같이 사는 걸까? 그러나 좀 바보여도 애가 착하면… 아니, 부단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스스로의 몸을 움직이며 우직하게 살면, 적어도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과 불안을 겪지 않아야 좋은 사회일 거라 믿는다. 내가 ‘재테크의 귀재’로 변모하는 것보다 한국 사회가 바뀌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구성원이 불안과 고통의 굴레 속에서 개인 자산을 증식하려 애쓰지 않아도, ‘일생일대의 기회’를 쟁취하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고, 꼬박꼬박 공공보험과 세금을 납부하면 사회안전망에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로.
다행히 이번 정부의 기조는 내 바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신년사에 부동산 정책이 강조되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젊은 세대가 가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은 무엇보다 부동산을 통한 착취 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시공 마감과 불법개조 및 증축의 결과인 좁고 허접한 집에 살면서 다달이 집주인에게 적지 않은 돈을 바치는 경험은 굴욕감과 함께 영혼 깊숙이 상처를 남긴다. 일터에서 보람을 찾기 어려운 현실과 폭력적인 상사의 존재는 돈만 있으면 직장 그만둘 거라 이 갈게 만드는데, 때려치우고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도 부동산이 문제다.
건물 가치를 높이는 데에는 공간을 가꾸며 실질적으로 활동한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인데, 그동안 법체계는 소유자의 권익 보호를 우선시해왔다. 세입자의 노동가치는 건물주의 자본소득으로 환원되며, 한 번 세입자는 영원한 세입자로 건물주의 배를 불리는데 봉사하는 현실을 공고히 하는 구조.
가상통화 거래에 과몰입하는 청년이 많은 것은 분명 사회적으로 우려되는 일이고, 나 역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다만 가상통화 거래에 몰입하는 청년들을 그저 한심하게 여기며 비난만 하는 기성세대를 보면 실소가 나오는 것이다.
‘코인충’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무언가를 비난하는 그 뜨거운 마음은 착취 구조 및 희망 없는 현실을 향하도록 하자.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 보유세 인상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조속한 입법을 기대하고, 지지한다.
높은 지지율의 정권이니만큼 개혁의 보폭을 넓히기를 ‘희망’한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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