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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직설]인간이란

opinionX 2018. 1. 30. 15:31
‘성실한 탐욕’이라는 것이 말이 될까 싶은데, 이 기이한 자질을 자본주의 시대 우아한 덕목으로 등극시킨 것은 막스 베버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신의 삶에 유용한 자산 이상의 것을 근면하게 추구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적인 직업 윤리이자 신의 축복의 증좌임을 이야기했던 막스 베버 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성실한 탐욕’을 윤리적으로 승격시킨 베버의 면죄부에 대해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편이다. 거짓과 술수에 기반을 두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겨우, 자식에게 승계하는 것으로 끝내는 몇몇 자본가를 볼 때 특히 그러하다. 그런 걸 보면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게 임하는 죽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보다 비대한 이윤들을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 제거한다면?

이런 상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최근 읽은 김동식 소설집에도 이와 유사한 판타지가 등장한다. <재산이 많은 것을 숨길 수 없는 세상>이라는 글에는 재산만큼 몸집이 거대해지는 지구인 이야기가 나온다. 외계인의 마법에 의해 부자들은 아파트처럼 거대해지고 일상에서 소외되자 그들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게 되고, 모두 삶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자산만을 지니게 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윤리는 이렇게 바뀐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관계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드는 비용이 그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합시다. 재산이라는 것도 무인도가 아닌 사회 속에서나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0년간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서 글쓰기를 했다는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의 글은 과연, 기존의 문학관습과는 먼 것이었다.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나 복잡한 사회현실 같은 것과 무관하게 마구 뻗어가는 주물 노동자의 상상력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소설보다는 철학콩트가 어울릴 법하다. 그의 짧은 단상들은 대체로 ‘인간, 요괴, 악마’와 같은 존재들을 통해 인간을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연 주물공장에서 액세서리, 지퍼 등을 만들어낸다는 작가 김동식은 글에서도 ‘조물딱조물딱’거리면서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가령, 모두 인조인간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져 ‘인조인간’임을 아웃팅하게 되는 세상이 된다든가 혹은 늙은 부모를 디지털 공간에 모셔 가상의 삶을 살게하는 판타지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한편 허무개그 같기도 하고, 더러 기발한 해법 속에서 촌철살인의 풍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 미만한 차별과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 김동식은 이런 해법을 내놓는다. 정부는 인류 인공진화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의 출산을 장려한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거짓임이 밝혀지고 여섯 손가락의 아이들을 집집마다 갖게 된 부모들은 일체의 차별을 금지시킨다. 또 다른 예. 저승의 인구가 줄어들자 저승의 대표는 이승으로 건너와 한 사람이 죽으면 임의의 영혼의 짝을 같이 데려간다는 ‘사망 공동체’를 공표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무작위한 죽음 연대에 맞서 본인이 아닌 타인의 죽음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사회안전망’은 물론 사회의 폭력 근절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 죽음의 연대를 통해 “돈 한 푼 없는 노숙인이나 수백억 부자”의 목숨값은 평등해지게 된다. ‘나만 아니면 돼’가 아니라 ‘나일 수 있어’라는 무지의 베일의 정의가 실현되는 장면이다.

김동식의 콩트는 인간, 요괴, 악마 같은 허황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사회적인 것’에 대해 심오한 통찰을 보여준다. <무인도의 부자노인>이라는 단편에서 “통조림 몇 개 때문에 한 노인을 죽이려고 했을 때, 저희는 짐승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을 살려주고 나니, 그제야 저희는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이 되어 있더군요”라고 할 때, 또는 아무런 보람 없이 노동만 하는 회색인간들 속에서 노래 부르고 타인의 삶을 기억하는 예술가의 존재를 이채롭게 그려낼 때, 김동식은 짐승으로 추락하는 인간을 아슬아슬하게 구출해낸다. 인간이란 젊음과 재산에 눈먼 괴물 같은 존재일지라도 ‘타인’과의 관계들 속에서 인간은 기계나 인조인간이 아닌 겨우, 인간으로 오롯할 수 있다는 것, 작가 김동식이 일상의 노동에서 길어올린 값진 통찰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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