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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안경점’은 망원우체국 사거리에 있는 적당한 규모의 안경점이다. 1991년부터 자리를 잡은 그곳에서 나뿐 아니라 성산동과 망원동의 아이들이 대부분 첫 안경을 맞췄다. 주인인 30대 남자는 언제나 친절했다. 시력검사를 하고, 테와 렌즈를 고르고, 시간이 걸려 안경이 완성되고 나면 그는 “자, 한 번 볼까” 하면서 손수 안경을 씌워주었다. 그때 볼의 약간 윗부분에 그의 손이 닿았다. 참 따뜻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이 되어 나는 망원동(성산동)을 떠났다. 그러고는 학교 때문에, 군대 때문에, 직장 때문에, 그 무엇 때문에 계속 멀어져 있었다. 한동안 안경점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이전처럼 안경을 자주 부러뜨리지도 않았고 시력이 크게 변할 일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직장 근처에는 ‘안경나라’나 ‘다비치’ 같은, 점원을 몇 명씩 두고 영업하는 대형 안경점들이 있어서, 주로 거기로 갔다.

얼마 전 “스마트안경 딸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안경점 주인의 딸이라고 밝힌 그는, 얼마 전 출간한 나의 <아무튼, 망원동>이라는 책을 잘 읽었다면서 “작가님이 저희 부모님의 사업체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신 것 같아서, 반갑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 시간이 괜찮으시면 12월 중순쯤에 한번 가게에 방문해주시겠어요?” 하고 제안했다. ‘도시를 자신의 고향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아무튼, 망원동>을 내고서, 아무튼,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답장을 보내고 곧 만날 약속을 잡았다.

가는 길에, 동네 책방인 한강문고에서 나의 책을 한 권 샀다. 별로 많이 팔린 책이 아닌데도 베스트셀러 매대에 작은 메모까지 더해서, 왼쪽에는 유시민 작가가 오른쪽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있는 그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동네 작가의 책을 굳이 잘 보이는 매대에 놓아준 동네 책방의 후의에 깊이 감격했다. 한강문고부터 스마트안경점까지 약 3분쯤 걸리는 그 거리를, 어느덧 아홉 살에서 서른다섯 살로 훌쩍 자란 나는 나의 책을 들고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 내외가 나를 보고는 아, 왔네, 하고는 “아니 그때 얼굴이 남아 있네, 기억이 나요” 하고 몇 번이고 말했고, 나 역시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목소리도 그대로세요” 하고 인사드렸다. 아홉 살과 삼십대 후반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준비해 둔 책 다섯 권을 여기에 사인을 좀 해 줘요, 하고 꺼내 놓고는, 나의 안경을 벗겨서 이리저리 매만졌다. 나는 민망해서 “아이하고 놀다 보니까 안경 코가 계속 휘어요” 하고 변명하듯 말하고, 책 다섯 권에 나의 이름을 적어 나갔다. 과연, 책에는 ‘한강문고’의 도장이 선명해서 괜히 다시 울컥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는 시력검사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도수를 낮추는 게 더 잘 보이겠고, 난시도 조금 조정이 필요하겠고, 어디 이걸 한 번 써 보자” 하고는 새로운 렌즈를 내 눈 앞에 가져다 댔다. 갑자기 세상이 너무 밝아져서 나도 모르게 앗, 하고 반응하자, 그는 “됐네, 우리 밥 먹고 오자” 하고 나를 이끌었다.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안경점에 돌아와서 그는 완성된 안경의 렌즈를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내가 “사장님, 괜찮아요…” 하고 말하자 그는 “나는 여기에서 안경 팔아서 벌 만큼 벌었어, 이 안경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과 완전히 같은 모델이야, 렌즈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좋을 만한 것을 골랐어, 정말 좋은 안경이지, 그러니까 계속 글 잘 써요” 하고 답하면서, 나에게 안경을 씌워주었다. 25년 전 볼에 닿던, 그 따뜻한 감각 그대로였다.

어느 동네에나, 그 자리를 오래 지켜온 가게들이 있다. 그곳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노동을 해 온 이들이 있다. 스마트안경점에서 내가 맞추어 온 것은 단순한 안경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그래서 그 사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괜히, “아, 우리 동네는 여전히 ‘잘’ 있구나” 하는 마음이, 정말로 드는 것이다. 한강문고 역시 동네의 서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동네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여전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몸이 나이 들고 부수어지는 만큼 건물과 가게 역시 그런 부침을 겪겠지만, 그래도 그 사라짐이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추억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조금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일어나기를 바란다. 새로움과 여전함이 공존하고 그 안에서 자란 모두가 안녕한 공간, 도시의 고향이 가져야 할 모습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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