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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작하기 직전, 나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보스턴 로건공항에 도착한 뒤 기나긴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종교와 문명, 특히 그것들이 기록된 고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운 좋게 석유재벌 록펠러가 하버드대학에 지어준 기숙사에서 1년 동안 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냈다. 새끼 거북이가 알에서 깨어나 1년 동안 생존하기 위해 바닷속 심연으로 들어가 미역줄기로 연명해야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 기숙사는 4층 건물로 한 층에 스무 명이 거주한다. 중간에 부엌이 있어 각자 식사를 해결한다. 각 층에는 화장실과 샤워장을 공유하는 다섯 개 방이 한 유닛이다. 싫든 좋든 다섯 명이 1년간 함께 살아보라는 학교의 숨은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 오기 전에 외국인을 거의 보질 못했는데, 내가 보기엔 기상천외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가 살 유닛의 다섯 명 프로필이다.

첫째는 미국인으로 한 대형 교회 목사인 키가 2m나 되는 흑인 스탠리, 둘째는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이슬람 수니파 이맘(사제)인 이브라힘, 셋째는 티베트 출신 불교 라마승으로 현재는 시카고대학 티베트어 교수인 느왕, 넷째는 무신론자로 현재는 FBI 암호 해독가로 일하는 존, 그리고 다섯째는 한국에서 다양한 종교를 접해보지도 못했고 배울 기회도 없어서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무식했던’ 나. 나는 이 네 명의 기숙사 동료들과 운명적으로 1년 동안 살아야 했다. 싫든 좋든.

지금 생각하면 이 기숙사 생활은 종교와 삶의 시각에 관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당시 나의 목표는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학점 받아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형적인 이기적 인간이었다. 처음 보는 여러 종류의 ‘다른’ 인간들, 특히 종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종교를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이곳 생활이 가관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침시간 화장실과 샤워장 사용과 청소였다. 스탠리 목사가 화장실이나 샤워장을 사용하고 나면, 형용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그 후에 2~3시간 동안은 아무도 감히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이 곤경을 빠져나갈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나는 일방적으로 나머지 네 명에게 기숙사 샤워실과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학교 헬스클럽에서 샤워를 해결할 테니 화장실 청소를 빼달라고 통보했다. 나머지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든 상관없이 그 상황을 피하고만 싶었다. 내 삶의 원동력은 ‘나-먼저’라는 이기심이었고, 그것만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온 후, 몰래 화장실을 가보곤 깜짝 놀랐다. 화장실과 샤워장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향까지 피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티베트에서 온 느왕 스님이 남모르게 청소를 하고 향을 피워놓았던 것이다. 그는 1년 내내 묵묵히 수행하듯 청소를 하고 향기로운 향을 피워놓았다. 나는 그를 보면서 붓다가 떠올랐다.


붓다가 열반한 쿠시나가르 열반당에 모셔진 6.1m짜리 열반상_경향DB



붓다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저 신비로운 종교 경험이나 금욕생활, 그리고 한계를 극복하는 자기증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붓다는 해탈을 경험한 뒤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홀로 유유자적하며 니르바나에 거하지 않았다. 그는 땀내가 나고 북적이는 인간 군상들이 모여 사는 시장으로 돌아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향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다른 사람의 불행을 경감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냈다. 그는 열반에 든 뒤 초월적 평화에 탐닉하려는 영적인 유혹에 빠질 뻔했지만, 남은 40년의 생을 길거리에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바를 가르쳤다. 대승 불교에서 영웅은 ‘보디샤트바’ 즉 보살(菩薩)이다. 그는 깨달음의 직전에 열반의 희열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세상의 고통으로 돌아가기로, 사람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견디기로 결정한다. 1년 뒤 기숙사를 퇴거해야 했다. 무신론자 존이 할 말이 있다고 우리 모두를 불러 앉혔다. 그는 스탠리 목사나 이브라힘 이맘, 특히 내가 믿는 종교를 가짜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무신론자이지만, 종교를 갖게 된다면 티베트 불교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종교는 흔히 신념 체계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종교에서는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습득된 행동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믿는다’라는 영어 동사 believe의 의미는 ‘삶에 있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lieve/Liebe)을 찾아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충실하게 지키는 삶’이다. 성급한 종교 비교는 종교 간 우열을 매기고 자기 종교의 기준에서 다른 종교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제 그 ‘다름’을 ‘참아주는 행위(톨레랑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는 처사는 지난 2000년 이상 면면히 흘러와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에 대한 모독이다. 각 종교는 나름대로 자기만의 독특한 상징 체계와 행동 양식이 있다. 이것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다 보면 개별 종교에서 지향하는 ‘길’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착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토브’인데 그 본래 의미는 ‘향기’다. 착함은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 그것을 인내를 가지고 지키는 행위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준에서 내가 향기가 나는가?”를 질문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티베트 스님 느왕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매일 청소했어?” 그가 말한다. “자신이 좋아해서.”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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