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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뛰다 보면, 더 이상 숨이 차서 숨이 곧 멈출 것 같고, 심장이 너무 뛰어 터질 것 같은 한계에 부딪힌다. 달리기를 시작한 초보자는 그 순간에 쉽게 멈춰 선다.

숨을 몰아쉬면서 손을 허리춤에 대고 천천히 걷는다. 어느 정도 숨을 고르면,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다시 한계에 닿으면, 멈추는 행위를 반복한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 무시무시한 ‘동물’이 하나 있다. 나에게 항상 패배를 안기는 ‘괴물(怪物)’이다.

영어 단어 ‘몬스터(monster)’는 괴물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몬스터’라는 단어의 의미는 ‘한쪽과 다른 쪽을 구분하는 경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다.

몬스터는 나에게 익숙하고 게으른 과거로 돌아가라고 호통친다. 우리 대부분은 이 경계에서 작아진다. 그 증거가 우리의 ‘뱃살’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을 가장 위대한 비극으로 평가했다.

비극이란 우리에게 타락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면서, 우리 자신을 재현한 감동적인 이야기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우스와 왕비 요가스타의 아들로 태어났다.






라이우스왕은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새로 태어난 아들의 운명에 관한 신탁을 문의한다. 그 신탁은 끔찍했다.

언제인가는 이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선언한다. 라이우스는 갓난아이의 뒤꿈치를 한데 묶어 기어 다니지 못하게 만든다. 라이우스는 급기야 신하에게 이 아이를 산에 버려 죽게 만들라고 명령한다. 그 신하는 불쌍한 이 아이를 죽게 내버려둘 수가 없어, 근처 도시 고린도에서 온 목동에게 건넨다.

목동은 마침 자식이 없어 애타게 양자를 기다리던 고린도 왕 폴뤼부스와 왕비 메로페에게 아이를 바친다. 폴뤼부스는 이 아이의 발꿈치가 부어 있어, 그를 ‘발(푸스)이 부은(오이디) 아이’ 즉 ‘오이디푸스’라고 부른다.

세월이 지나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 델피로 가서 출생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신탁한다. 그 신탁 내용은 그가 자신의 부모를 죽일 운명이라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 고린도로 돌아가지 않고 델피 근처에 있는 테베로 여행하기 시작한다. 아뿔싸, 테베는 자신의 친부모가 있는 도시가 아닌가! 오이디푸스는 테베로 가던 중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교차로에 도착한다. ‘세 갈래’ 길은 플라톤의 용어를 빌리자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무시무시하고 이해하기 힘든 ‘코라’이다.

그는 그곳에서 전차를 타고 가는 테베의 왕이자 자신의 친부인 라이우스와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누가 먼저 길을 가느냐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우스를 살해한다.

라이우스는 오이디푸스의 친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극복해야 할 과거의 관습, 관행, 습관, 편견과 같은 것을 상징한다.

인간이 스스로 온전해지기 위해선 아버지로 상징되는 과거에 대한 청산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과거란, 자신의 선택이 아닌 그에게 알게 모르게 부여된 정신적인, 사회적인, 역사적인 얼개들이다.

인간이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이 얼개들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재점검하고 재선택해야 한다.

오이디푸스는 그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 운명적으로 부친을 살해한 후, 테베의 성문으로 향한다.

테베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는 괴물이 웅크리고 있다. 이 괴물을 ‘스핑크스’라고 부른다.

그리스어 ‘스핑크스’는 새로운 단계로 무모하게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목을 조르는 존재’라는 뜻이다.

스핑크스는 괴물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속해 있지 않은 하이브리드다. 머리는 인간, 등은 사자, 그리고 새의 날개를 가졌다. 스핑크스는 테베로 들어오려는 자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만일 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바로 목을 졸라 죽여 먹어치운다. 그러나 그가 문제를 푼다면, 성문을 통해 테베로 들어갈 것이다.

수수께끼는 이것이다. “한목소리를 가졌지만, 아침엔 네 발로 걷고, 오후엔 두 발로, 그리고 밤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대답한다. “사람입니다. 어릴 때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어른이 돼선 두 발로 걷고, 늙은이가 되어선 지팡이까지 포함하여 세 발로 다닙니다.”

오이디푸스의 대답을 들은 스핑크스는 당황한다. 그는 경계를 지키는 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해, 자책감에 시달려 높은 절벽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자살한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그 길을 막고 있는 스핑크스는 사실 오이디푸스 자신이었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버려야 할 과거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오이디푸스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자신이라는 괴물과 대면하고 그 괴물을 죽이는 일이다.

인간이 어린아이처럼 주위 환경과 가족에게 의존하는 존재에서 스스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시선을 저 높은 곳에 고정하고 전진할 때 자기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나를 과거의 나로 잡아당기는 괴물은 우리의 일상에 숨어 있다. 적어도 나에겐 매일 아침 조깅할 때 만나는 숨참과 거친 심장박동이다. 이 괴물을 극복해야 뱃살이 없어질 것이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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