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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간이 내게도 왔다. 불현듯. 문득 걸음이 멈춰지더니 사방이 새하얘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무엇에도 무기력해지는 순간. 그러고선 애초에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이게 되는 순간. 축축한 안개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그저 안개가 되어가는 시간. 이토록 화창한 봄날에 때아닌 우박처럼 상습적인 미세먼지처럼 낯설고도 싫은 공격.

여느 때처럼 토마토를 갈고 새우 껍질을 깠다. 소스와 양념들을 일렬로 늘어놓고 테이블 세팅을 마치고 손님을 기다렸다. 거리에 인적이 없었다. 바람은 차고 거칠었다. 지나가는 계집애의 얇은 치맛자락이 함부로 나부꼈다. 예약은 없었다.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익숙한 음악소리만이 빈 테이블 위로 흐르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 빈 시간을 틈타 냉장고 정리를 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시험해 보거나, 와인 리스트를 새로 짜거나 하면서 미뤄두었던 일들을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약속이니까. 내가 열어놓고 있기로 한 시간. 혹시라도 뒤늦게 올지도 모를 사람들을 배반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나는 앞치마를 벗었다. 그리고 말했다. 문 닫는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머릿속의 말을 무시했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었다. 안다. 아는데도 그렇게 되었다. 문을 닫기 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여기 없는 사람. 들키지 않으려고 벽에 몸을 숨기고 숨을 참았다. 전화벨 소리가 멈춘 후 그곳을 나왔다. 범죄현장을 빠져나가는 사람처럼 재빨리. 되돌아보지는 않았다. 식당을 나와 장례식장으로 갔다. 친구의 시부상. 따지고 보면 잠시 들러 조의만 표하고 오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구석에 혼자 자리를 잡고 꽤 오래 앉아 있었다. 고인에 대해 장례 절차와 장례 전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한 일상들에 대해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타까움은 있지만 비통함 같은 것은 생기지 않는 일상에 가까운 애도였다. 친구가 예를 갖추러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떡이나 마른안주 같은 걸 습관적으로 집어먹으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다.

식은 우거짓국을 먹다가 문득, 먼 나라에 사는 아픈 시인을 생각했다. 학생 기숙사 시절에 생일을 맞아 취사실에서 미역국을 끓였는데, 다른 독일 학생들이 몰려와 마늘 냄새고 뭐고 다른 요상한 음식 냄새는 참아주겠는데, 그 미역국 냄새만큼은 참아줄 수가 없으니 제발 멈춰 달라 했다고, 그래서 혼자 굳이 끓인 생일미역국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던 이야기가 휙 지나갔다. 지난한 학생 시절이 끝나고 이젠 미역국도 마음대로 끓여먹을 수 있고, 웬만한 채소들은 작은 텃밭에서 키워먹을 수 있는데, 고향에서 즐겨먹던 방아만큼은 씨앗을 구할 수 없더라던 그에게, 돌아가면 방아씨를 구해 보내주겠다 했던 약속도 뒤따라왔고, 내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방아씨를 보내주기로 했었는데. 우리집 텃밭에는 올해도 방아가 지천인데. 그게 뭐라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걸까.

그의 시를 가슴에 품고 다니던 습작 시절이 있었다. 어느 시 한 구절에 어떤 생을 통감하고, 어느 시 한 구절을 내가 가닿고 싶은 이상으로 삼고, 읽는 것만으로 맞닿아 있다는 촉감을 느꼈던 수많은 문장들. 그와 함께 보낸 먼 나라에서의 시간을 추억했다.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이윽고 도착한 황량한 기차역에서의 만남과, 첫 만남이었는데도 낯설지 않게 서로 손을 덥썩 잡아버렸던 그 순간의 짜릿함. 함께했던 새벽 숲 산책과 거기서 들려주었던 소소한 이야기들. 자전거전용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슬며시 팔짱을 끼고 제 쪽으로 끌어당겨 멀리서 오던 자전거를 피하게 만들던 그 세심한 손길 같은 것. 너무도 아득하고 지독히 생생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영 문학을 너무 무겁게 지고 있지 마. 한밤중 비좁은 테라스에서였는지, 칼바도스라는 술을 연거푸 비우던 어느 바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에 모든 것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울어버렸던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 조그만 사람의 품에 안겨 울었던가.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처음 전해들었을 때, 나는 주방 싱크대 밑에 숨어 한참을 울었다. 좁은 싱크대가 그의 품처럼 여겨졌다. 말기암 항암치료 이어오는 절망적인 말들과 가닿기에 머나먼 그곳. 그 후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를 기억해내고 그의 문장들을 소환해내는 것뿐. 내내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지인을 통해 그의 소식을 묻고 전해듣는 것만이 유일한 끈이었다.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먼 나라에서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한 시인을 떠올리는 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낯선 느낌이었다. 눈물이 차고 넘치는 내가, 문학이든 생활이든 삶이든 관계든 그 모든 것을 무겁게 지는 것이 습관이 된 내가,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게 무기력해져버린 것일까? 그가 결국 병을 이겨내고 이곳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웃으며 시를 읊어주리라는 기대와 바람 때문인지, 문학이든 인생이든 너무 무겁게 지고 있지 말라던 그의 당부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내게 들이닥친 무기력과 무의미함의 안개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벌세우는 것 같아, 난 괜찮으니 이제 그만 집에 가봐, 내일 또 일할 준비 해야잖아. 친구가 나를 일으켜세웠다. 빈소에서 나와 장례식장 입구의 전광판을 보며 먹먹히 서 있었다.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머쓱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켜자 작업 중이던 원고와 자료 화면들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이어 하고 싶지 않은 시간. 열린 창을 하나씩 닫았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경고인 듯 위안인 듯, 인용하기 위해 적어놓은 산초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맙다 산초.

“저는 적어도 혼자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차라리 구두장이가 하는 짓처럼 이빨로 가죽을 물고 자기가 원하는 데까지 끌려오도록 끌어당기겠어요. 하늘이 정해놓은 마지막 순간이 오는 날까지 계속 먹으면서 내 인생을 끌고 가겠다는 겁니다. 제 말을 들으세요. 식사를 하시고 이 풀밭의 파란 이부자리 위에서 잠깐 한숨 눈 붙이세요. 그러고 나서 잠을 깨시면 마음이 좀 편해지신 것을 알 겁니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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