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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가장 왕성할 때는 첫술을 떴을 때다. 눈과 코와 귀로 간접적인 맛을 느끼다가, 비로소 혀의 돌기에 닿아 몸이 바삐 돌아가기 시작할 때. 씹고 빨고 삼키면서 하나의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작의 순간. 갈급과 충족이 시소를 타며, 먹으면서도 배가 고픈 시간. 그래서 다이어트를 할 때에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식욕은 그보다 먼저 발동한다.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 무슨 음식을 만들지, 무엇으로 어떻게 조합하고 조리해서 어디에 어떻게 담아낼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시간. 그때가 바로 첫술의 시간, 왕성한 식욕의 시간이다. 그래서 장을 볼 때는 배를 채우고 가야 한다.
대부분의 다른 일들도 그러하다. 글에 대한 탐닉은 독서에서도 오지만 서점을 둘러보고 책을 고르는 시간에 더 강렬해진다. 정말 맛있을 것 같아, 몸에 좀 좋을 것 같아, 아주 새로울 것 같아. 독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강조부사가 붙는다. 그래서 내 책장에는 사 놓고 채 못 읽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이미 다 맛본 음식 같아서?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시간은 얼마나 황홀한가. 막 도착한 여행지의 터미널은 얼마나 두렵고 신선한가. 등산로 입구의 팻말은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소설 쓰기의 첫 문장은 그렇게나 뜸을 들여서야 나오나보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너무나 왕성하기에.
어떤 일에 마침표를 찍고 난 후 되돌아보면 일을 하는 동안의 고난과 즐거움도 떠오르지만, 바로 그 ‘첫’의 기억만큼은 심장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강력하게 출몰한다. 처음 잡았던 그 사람 손이 따뜻했는지 축축했는지, 언제 깍지를 꼈다 풀었는지, 그때 바람이 불었는지 낙엽이 졌는지. 그 첫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랑은 갔어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식당을 접고 나서도 그와 관련된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들은 그대로 두었다. 무언가 다른 방식을 도모하기 위해서였기도 했고, 이전의 존재까지 사라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곳에서는 깨끗이 비운 접시가 여전히 손님을 맞고 보낸다. 그 탓인지 아직까지도 예약 메시지가 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 시간을 톺아보게 된다. 물론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테이블 냅킨이나,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평생 써도 못 쓸 것 같은 업소용 랩 따위의, 정리하고 난 후에 남은 물건들을 볼 때에도 그렇다. 찾아가지 않은 열두 개의 크고 작은 우산, 상표가 인쇄된 와인잔이나 맥주잔 같은 것들.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많이 샀나, 비올 때 왔다가 비 그친 후 돌아간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수많은 사람과 오만감정이 널을 뛴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윽고 식당을 준비하던 시절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에 이르면 사방이 고요해지며 묘한 황홀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 봄에서 여름. 나는 마드리드의 어느 시장에 있는 요리학원에 다녔다. 대단할 것 없는 과정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고 솜털을 돋운다. 수강생 대부분은 취업이나 개업을 목적으로 단시간에 요리를 배우려는 이들로, 시장에서 공수한 재료로 하루 세 가지 요리를 만들고 함께 시식하고 남은 것은 각자 도시락에 싸 가는 방식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음식을 보관용기에 먼저 담아 놓고 남은 것으로 시식을 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가져다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각자 몫으로 가져가는 음식을 처치할 방도로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밥을 포기하거나 내가 만든 음식을 버려야만 했는데, 때마침 버스정류장에서 구걸하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음식을 건넸다. 그는 흔쾌히 받아주었으며, 다음날 맛있었다며 손등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만든 음식을 모르는 이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은.
내가 한 음식을 먹어준 사람은 셋이었다. 버스정류장 할아버지. 그는 늘 술병과 바게트를 끌어안고 잔다. 시장 입구에서 여행용 티슈를 팔며 구걸도 하는 알제리 총각. 여행용 티슈는 얼마나 오래 주물럭거렸는지 포장이 이미 해지고 더러워진 상태다. 판매보다는 구걸이 주목적. 마지막은 기숙사 근처 공원에서 노숙을 하는 인도 여인. 나무 그늘에 기대앉아 천천히 힘겹게 빵을 씹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가끔 주머니에 동전 하나를 주고받으며 안면은 있었지만, 문득 내민 도시락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아무래도 잘못한 게야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 내 앞을 막아선 그녀의 남편. 너 어제 먹을 거 주고 간, 걔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어, 그런 음식 처음 먹어봐, 아내가 지금 다른 데 있어, 인사를 꼭 하라고 해서, 그래서 기다렸어. 그런 말은 어찌 그리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그 자리에 서서 울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그 여름의 일상이 되었다. 요리를 배우고 도시락을 싸서 건네주고 시식평을 듣고. 어쩐지 순정했던 것만 같던 그 여름. 오늘은 뭐 배웠어? 너 요리 많이 늘었더라? 어제 돼지고기는 내 입맛엔 별로였지만, 내 친구는 맛있었대. 식당을 열기 직전, 그 여름의 임시개업 시절. 첫술의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 목소리.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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