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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뮤니티에 노인은 젊을 때가 좋았다고, 퇴사를 한 중년은 일할 때가 좋았다고, 일하는 청년은 학생일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한다며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좋은 때에 있다고 응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감동을 받았다거나 위로가 된다는 호응의 물결을 기대했겠지만 댓글은 냉소로 가득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은 힘들어진다는 거잖아요’라는 역설적인 댓글에 수많은 추천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저 말이 맞다고 낄낄댔지만 자조적인 웃음 속에선 정곡을 찔려 아픈 내색만 보일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지만 요즘 무너져가는 일상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 하나뿐인 집을 팔아 전세를 들어 살 집을 구해야 하고, 생계를 책임지게 되어 일을 그만두려던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자연스레 복학을 예정했던 학교에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삶이 조금 버거워졌다고 느낄 때마다 하나씩 다가올 예정된 불행이 떠올라 모든 의욕이 꺾이고야 말았다. 그럴 때면 타인의 불행과 비교해가며 내 처지를 위로하진 말겠다는 다짐도 무너졌다. 고작 이런 불행 앞에서도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다들 어떻게 참고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기대할 것 없는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이어질 때마다 다르게 사는 법을 상상했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자가에 사는 4인 가족의 화목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이것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확신이 간절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치유와 위로의 문장보다 정상적인 삶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내 삶을 인정해주는 언어였다.

곧 인정의 언어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불행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정확한 언어를 찾아 모두와 공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사람의 모습으로. 그래서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은 대안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행동으로 옮겨 작고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 그 자체였다. 그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면 몇 번의 절망에도 다시 한 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며 얻은 낯선 감각이 내 삶을 구했다는 것을. 커다란 사고 앞에서 개인은 나약하지 않고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덕분에 절망이 회복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정도로 찾아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더 큰 무력감에 빠지기 전에 되도록이면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아직 자기 삶의 언어를 찾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살로 느끼는 부당한 일상,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의 공존 가능성과 공동체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공간을 마련했다. 5월부터 수요일 저녁마다 참여연대에서 모일 예정이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영광만 돌아보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우리가 이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 싶겠지만 우리가 달라진다. 이건 지금으로서 충분치 않은 삶의 의미를 찾아 다시 한 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용감한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자 추천사다.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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