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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완승으로 끝나자 윤석열 대통령은 정당 정치적 승리보다 경제와 민생을 얘기해야 할 때라며 이를 위해 협치도 가능하다는 여운을 남겼다. 상황에 따라서는 국민의힘을 견제한 발언으로 볼 수도 있다. 정당 정치적 승리를 통해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내 기반이 약한 윤석열 정부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의 성패는 주로 야당과의 관계가 아니라 정부와 여당의 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가 더 이상 대통령 집무실이 아니므로 당·청 관계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지만, 어떤 표현으로든 앞으로도 중요하게 회자될 정부·여당 관계는 윤석열 정부에 더욱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추방된 자의 귀환에 비유할 수 있다. 민주당 정부에서 내쳐진 장수가 국민의힘이라는 적국을 평정해 그 수장으로서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도 대권 불임 상태여서 귀순한 장수를 반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문제는 이렇게 탄생한 대권이 여당 내 지지 기반이 탄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방선거의 완승은 총선을 앞두고 계파마다 그 승리의 몫을 자신의 지분으로 연결하려는 욕구를 꿈틀거리게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우선적으로 넘어야 할 난관이 바로 정부·여당 관계이다.
추방된 자의 귀환이 희망의 정치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은원을 버리고 상생의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추방된 자의 과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합리적인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한다면, 그의 과거는 오히려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협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협치에서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경제와 민생을 꼽았다. 경제와 민생은 언제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정치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이슈다. 언제나 중시해야 할 과제이지만, 골 깊은 갈등을 무마하기에는 식상한 이슈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방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은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했다. 대선 연장전으로 치러지면서 그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자치는 정작 사라지고 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점을 짚어내면서 지역 자치를 중요한 과제로 언급하면서 협치의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면 매우 시의적절하고 유용한 주제가 되지 않았을까. 국민의힘이 장악한 지자체들도 지역 정부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지역 자치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더불어민주당도 지자체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지역 자치의 확대를 반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대의 의지와 힘도 협치의 중요한 요소다. 지방선거에서 완패했다고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은 169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어 협치의 힘이 충분하다. 문제는 지방선거 패배의 여파가 큰 당내 상황으로 인해 협치를 수용할 여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선거 책임론과 당권 경쟁을 두고 계파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에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분당이다. 그 결과 국회 의석이 줄어 다수당의 입지를 잃고 국민의 신뢰도 상실해 다음 총선에서 또다시 참패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윤석열 정부에도 나쁜 시나리오로 작용한다. 협치가 무산될 뿐 아니라, 방심한 국민의힘도 대정부 관계를 두고 분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일부의 협치를 얻어낸다고 하더라도 이 협치는 다시 국민의힘 일부로부터만 지지를 얻어 의회 다수의 지지로 연결되지 못할 수 있다.
정당의 이합집산은 주로 총선이나 대선 전후에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 및 총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쁜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한국의 정당 체제는 재편될 것이다. 그 재편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할지라도 재편까지의 해체 과정은 적지 않은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적어도 정부 정책의 정체나 위기를 초래해 한국 정치의 퇴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총선이 대선의 연장전이 될 것이란 얘기까지 돈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점이 될 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재기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여야가 모두 내분과 대치를 지속하면서 누가 덜 패배할 것인가를 다투기보다 정책 경쟁과 협치를 통해 건설적인 승부를 겨루어야 할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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