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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책을 내놓은 소설가를 만났다. 작업실이 따로 없는 그녀는 주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창가에서 글을 쓴다고 했다.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커피숍에 가야만 좋은 글이 써질 것 같은 조바심이 이는 게 아닌가?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커피숍으로 달려갔는데 웬걸, 생각보다 사람이 꽤 많다. 탁 트인 2층, 중앙에 배치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을 즐기거나, 수다를 떤다. 적당한 조도의 개별 조명을 갖춰 공부하기에 그만인 테이블은 학생들 차지다. 앞자리 여자분은 노트북을 켜고 입사 지원을 하는 중이고, 옆 테이블에서는 중간고사 대비 시험공부가 한창이다. 소규모 커피숍과 달리 ‘세월아 네월아’ 앉아 있어도 눈치 줄 사장도, 추가 주문에 대한 부담도 없다. 은은한 커피향과 음악, 사람들의 대화가 섞인 적당한 소음과 풍성한 햇빛, 각자의 자리 밑에 장착된 콘센트 덕에 배터리도 든든하다. 통유리창 앞에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책을 뒤적이다 보면 없는 여유도 생기는 것 같은 착각은 덤이다.


(경향DB)


다음날, 이번에는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다. 고등학교 때 주로 이용하던 도서관은 시간이 멈춘 듯 여전하다. 바코드를 일일이 찍지 않아도 한꺼번에 대출되는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된 자료실과는 달리 매점은 십수년 전 모습 그대로다. 시멘트 바닥을 울리는 마찰음,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외벽, 말라붙은 라면 국물 자국과 불어터진 면발이 그대로인 테이블, 먼지와 함께 공기 중에 떠다니는 컵라면의 조미료 향까지…. 고등학교 시절 즐겨먹던 ‘매점표’ 불량 먹거리들과 왕왕대는 TV 소리만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사람이 없다보니 왠지 더 썰렁한 느낌이다.


도서관은 공공장소지만 매점만큼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도서관 매점은 공개입찰을 통해 최고가를 써낸 사업자에게 낙찰되기 때문에 개인의 영업공간이다. 도서관 매점은 특별한 수완 없이 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 중 하나여서 인터넷을 잠깐만 검색해봐도 창업비용과 약정 기간 등을 지역별로 찾을 수 있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를 써붙인 도서관 매점이 많은 이유다. 요새는 컵라면도 먹지 못하게 하는 곳이 늘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매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실 도서관은 학교를 제외하면 가장 다양한 구성의 대중이 연령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공공공간이다. 공부하러 온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매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도서관 매점의 음식이야말로 학교급식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공공성을 요구받아야 하지 않을까? 1000원짜리 캔음료라도 사먹지 않고서는 무료로 이용할 공간을 찾기 어려운 요즘이라면 더욱 그렇다. 도서관은 ‘기부금을 내면, 입장권을 끊으면, ○○카드 고객이면’ 등의 조건 없이 무료 이용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만큼은 아니더라도 도서관 매점은 좀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직 도서관 매점에는 사례가 없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이 공동 출자해 ‘친환경 먹거리 학교 매점’을 운영 중인 영림중의 시도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경기도에서도 학교 매점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6개 학교에 불과하지만 시작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이미 발빠르게 사회적기업이나 저소득층의 자활사업장, 공정무역 단체와 손잡고 매점을 북카페 등으로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는 반가운 뉴스도 들려온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 그리고 도서관 매점이 아늑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바뀐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그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앉아 있을지 궁금하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선택할 만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새삼 궁금해진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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