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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은 ‘무주택자의 날’이다. 1992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합’에서 이날을 무주택자의 날로 정하면서 매해 철거민들이 중심이 되어 주거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행사를 해왔다. 하지만 주거권으로 실현되는 생존권의 문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3년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조심스러운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전셋값이 너무 올라서 그는 자기가 가진 돈으로는 집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조그만 방에 월세로 살자니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내게 혼인신고를 해줄 수 없겠냐고 했다. 낭만적인 프러포즈와는 거리가 멀었다. 혼인신고를 하면 정부가 보증하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보증금을 모으지 못해 창문 없는 고시원에 틀어박혀 언제 이곳을 탈출하나 끙끙 앓던 나 또한 남자친구의 고민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혼인신고를 해줄 순 없었다. 헤어지면 어쨌든 공식 서류에 ‘이혼’이라는 기록을 남길 생각을 하니 선뜻 내키지가 않아 결국 거절했다.


하숙집과 월세방을 안내하는 광고전단 (경향DB)


서울시의 1인 가구는 4가구당 1가구로 지난 30년간 10배 이상 증가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경제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20~30대 청년층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주거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고시원, 반지하, 쪽방 등에 거주하고 있다. 2000년 도입된 최소주거기준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최소주거면적은 14㎡(4평)다. 고시원, 반지하, 쪽방촌을 전전하는 이들은 이런 최소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홈리스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최소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보금자리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주거환경에 노출된 청년들의 주거권 실현을 고민하는 ‘민달팽이유니온’의 자료에 따르면 고시원의 3.3㎡(1평)당 임대료가 타워팰리스보다 비싸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 시내 고시원의 3.3㎡당 임대료는 14만원에 달했다. 반면에 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타워팰리스의 3.3㎡당 임대료는 12만원에 불과(!)했다. 창문 없는 고시원에 웅크려 잠드는 학생, 일용직 노동자, 기러기 아빠, 아주머니들이 강남의 부유층에 비해 비싼 임대료를 부담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부와 빈곤이 교차하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경향DB)


실제로 주변에서 월세를 구하는 청년들의 경우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70만원이 든다. 한 달 수입의 25~50% 수준이다 보니 50만원이 넘어서는 순간 혼자 살 수 없어서 좁은 방에서 2~3명이 모여 살기도 한다. 나이가 조금 들어 독립을 하겠다고 해도 온전한 자기 집을 가지는 게 아니다. 방 한 칸씩을 나누어 갖는 하우스메이트나 자신이 빌린 집을 다시 세놓는 셰어하우스 개념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낯선 사람과의 동침으로 인한 불편함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참아내는 것에 비하면 사치일 뿐이다. 이 불편함이 싫어서 적은 돈으로라도 혼자만의 주거를 꿈꾸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대치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이나 교통편이 불편한 달동네다. 물론 공간을 혼자서 점유하기보다 함께 나누는 셰어하우스가 대안일 수도 있지만, 연애와 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독립은 모텔비를 아끼느냐 마느냐의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어느 공기업의 광고가 외친다. “집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것이다”라고. 이 카피 문구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21세기 쪽방촌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그 자체다. 앞으로 주거환경은 우리가 수돗물과 전기를 쓰고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자연스러운 권리로 받아들이듯 사회 구성원에게 당연히 보장된 권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더 이상 사고팔거나 돈을 굴리기 위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주거권을 고민해야 한다.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의’가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주택의 공급 물량을 줄이고 가격부양 정책에 몰두하는 박근혜 정부의 행보가 우려스럽다.



김영경 | 청년유니온 초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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