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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하철은 낯선 사람들이 함께 이동하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는 사소한 행동 하나가 타인에게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이따금 도마에 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여성들의 화장이다. 좌석에서 얼굴을 단장하는데, 간단하게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아예 작은 화장대를 펼쳐놓고 파운데이션을 바르기도 하고 심지어 헤어그루프로 머리카락을 말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여성들 나름의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야근이 잦은 데다가 출퇴근 시간마저 길어서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직장 여성들은 부득이하게 지하철에서 짬을 내어 화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여성이 맨 얼굴로 출근한다는 것은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것만큼이나 부적절한 태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 해도 공공장소에서 요란한 화장을 거리낌없이 하는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쩍벌남’이나 길거리에서 가래침을 탁탁 뱉는 아저씨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왜 그럴까.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것을 둘러싼 맥락과 상황에 결부되어 의미가 발생한다. 그래서 가령 해수욕장에서는 수영복이 자연스럽지만 그 옷차림으로 거기에서 약간 벗어난 구역을 거닐면 문제시된다.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나 행동은 불쾌함이나 민망함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그러한 어울림의 감각은 일정한 경계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 가운데 사적 영역의 경계가 매우 중요하다. 집에서만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일들을 집 바깥에서 하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또한 집 안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달라진다. 가족들끼리는 몸가짐을 대충 해도 괜찮지만, 손님이 오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처신한다. 말하자면 ‘자연적 신체’를 감추고 ‘사회적 신체’로 자기를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타인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우리는 안면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지만, 생면부지의 관계에서는 무시할 때가 많다. 지하철에서의 화장이 당황스러운 것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무심함 때문이다. 빽빽한 인파 속에서 연인들의 적나라한 애정표현을 접할 때 그러하듯,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여겨지고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다.

공공장소에서는 저마다 점유하고 있는 일정한 영역을 서로 지켜주어야 하면서도 (전철에서 다른 사람을 뻔히 쳐다보거나 옆 사람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아서는 안된다), 그 개인적 영역 안에서의 행위는 일정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그러한 긴장이 적절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점점 분절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온라인 세계에 몰입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오프라인상의 고립은 깊어진다.


서울 지하철 열차 내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의 디자인이 눈에 잘 띄도록 개선된다. 좌석과 등받이, 바닥까지 임산부 배려석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분홍색으로 꾸민 서울 지하철 2호선이 23일 오후 시범운행 되고 있다._경향DB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일수록, 무한의 네트워크로 뻗어 있는 개별적 소우주들로 파편화되기 쉽다. 익명의 장소에서 그런 밀실들은 무수히 병렬된다. 그 비가시적인 칸막이에 익숙해지다 보면, 관심이 미치는 범위가 좁아지고 주변 상황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외의 장면에서 타인과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어느 청각장애인이 휴대폰의 화상 통화를 열어놓고 수화로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손으로만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자 옆 사람에게 전화기를 잠시 들고 있어 달라고 스스럼없이 부탁했고 그 승객은 기꺼이 응했다. 청각장애인은 이제 두 손으로 자유롭게 수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옆 사람은 전화기를 들어주면서 물끄러미 화면을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도시의 품격은 낯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느냐로 가늠될 수 있다. 타인의 시선과 느낌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몸가짐에 주의를 기울이고, 타인의 어떤 행동이 다소 심기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 너그러운 무관심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도 이따금 뜻밖의 계기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즐거운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도시적 삶의 묘미다. 사소한 차이들로 인한 부질없는 혐오와 적대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시민 문화의 매력을 함께 만들어가는 감수성이 자라나야 한다.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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