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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길을 걷다보면 꼬투리가 펼쳐진 달맞이 풀이 연신 눈에 띈다. 아직은 햇살이 등짝을 따스하게 비추지만 한해살이풀들은 자신의 분신들을 여기저기에 숨겨놓고 겨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솟은 나무들도 이파리에 남은 영양분을 서둘러 몸통으로 옮기면서 잎싹 꽃싹을 머금은 봉오리들을 마련한다.  

가을이 한창이다. 열대우림은 그렇지 않겠지만 머지않아 온대 지방의 숲은 일제히 나뭇잎을 떨구고 중위도 지구 북반구의 광합성 표면적을 현저히 줄여나간다. 이렇게 광합성 속도가 줄어듦에 따라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분석한 이산화탄소의 수치는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한다.

식물들이 자라고 씨를 맺는 데 필요한 주된 영양소는 이산화탄소와 물이다. 물을 분해해서 전자와 수소 이온을 얻은 식물은 이들을 이산화탄소에 붙여 포도당으로 만든다. 이 단계에 빛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체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일컫는다. 자신이 사용할 식재료를 스스로 생산한다는 점에서 식물은 독립 영양 생명체이다.  

반면 우리 인간은 자체적으로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종속 영양 생명체다. 우리는 그러나 포도당을 이산화탄소로 바꾸면서 식물의 먹거리를 약간 챙겨주기는 한다. 광합성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세포 과정을 우리는 호흡이라고 한다.

하지만 호흡과 광합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각 과정에 사용되는 재료의 에너지양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안정적이지만 매우 낮은 에너지를 가진 이산화탄소에 태양에너지를 부어 고에너지 탄수화물을 만든다. 인간은 이 농밀한 화학에너지를 함유한 탄수화물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고 이를 물건을 들어 올리는 운동에너지, 신경세포끼리 신호를 전달하는 전기에너지 혹은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열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이렇게 식물은 인간을 지구 밖의 에너지원인 태양과 연결시킨다.

지구 역사에서 광합성이 등장하기 전에 생명체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에너지원은 지구 내부에서 나왔다. 심해의 바닷물을 데우고 인도대륙을 움직여 히말라야산맥을 높이 들어 올린 힘이다. 수천도에 달하는 지구 내부의 열이 지각판을 움직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 해 1인치씩 대서양을 넓히는 힘도 지구 내부의 열에서 기원한다. 또한 지구 내부의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심해 생명체들도 존재한다. 이 내부 에너지에 더해 광합성은 지구 밖에서 거저 들어오는 태양 에너지를 여투어 생명체가 한동안 보전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했다. 천년 넘게 살아남은 용문산 은행나무에는 천년 전에 한반도에 도달한 태양에너지가 살아 있다. 태백산맥 준령에 파묻힌 석탄은 훨씬 더 오래 묵은 태양에너지이자 수억년 전 대기 중에 존재했던 이산화탄소 덩어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식물은 대기 중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안으로 끌어들일까? 바로 기공(氣孔)을 통해서다. 기공은 우산이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육상 식물이 가지고 있는 핵심기관이다. 하지만 식물은 주변 상황에 따라 기공의 열고 닫음을 면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빛이 도달하지 않는 밤에는 물론 기공을 열 필요가 없다. 한편 주변에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다고 해도 오래 기공을 열어두는 일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건조하거나 기온이 높으면 기공을 통해 수증기가 날아가 전체적으로 광합성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성 미생물이 기공을 통해 식물에 침입하는 일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지금부터 40여년 전 과학자들은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과 기공의 개수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눈치챘다. 또한 실험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198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대학 식물학자 F 이안 우드워드는 같은 종의 식물이 산꼭대기에서 자랄 때와 평지에서 자랄 때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산꼭대기에 사는 식물은 뿌리가 잘 발달했지만 덩치는 작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산꼭대기 식물이 평지에 사는 사촌들보다 더 많은 수의 기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드워드는 실험실에서 변수를 바꾸어가면서 관찰을 계속했다. 산꼭대기와 평지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검토한 것이다. 두 환경을 모사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 예컨대 온도와 습도 혹은 빛의 차이는 기공의 숫자를 결정짓는 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공의 숫자를 변화시켰다. 산꼭대기에서 식물이 확보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평지에 비해 더 적었던 것이다. 중력 때문에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의 밀도는 줄어든다. 높은 산에서는 산소의 양도, 이산화탄소의 양도 적다. 산꼭대기와 달리 평지에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부족하지 않다. 재료와 에너지가 드는 기공을 적게 만들어도 식물이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21세기로 접어들며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의 양은 약 380ppm에 이르렀다. 매년 2ppm씩 빠르게 늘고 있다. 1998년 영국과 중국의 공동연구진은 현생 은행나무와 1924년에 수집한 은행잎에서 기공의 숫자를 비교했다. 20세기 약 70년이 지나는 동안 은행나무 뒷면에 있는 기공의 수는 ㎟당 137개에서 97개로 줄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냉장고 및 아파트 등이 본격적으로 호흡에 가세하면서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한 결과이다. 온실가스에 갇힌 태양에너지는 지구의 온도를 급하게 올리고 한반도에 잦은 가을 태풍을 몰고 온다. 여기서도 문제는 속도다. 2015년이 지나며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양이 공식적으로 400ppm을 넘었다고 탄식했다. 그 뒤로 불과 5년이 넘지 않은 2019년 5월 지구 대기 이산화탄소의 양은 ‘공식적으로’ 415ppm을 넘었다.  

태풍 ‘미탁’이 한반도 상륙을 목전에 둔 오늘도 은행나무의 뒷면에서는 기공의 수가 줄고 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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