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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물어본 사람은 없지만, ‘탈(脫)브라’ 취재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지난달 15일자 토요판 커버스토리에 ‘굿바이, 브라’라는 제목으로 한국 여성 31명의 탈브라 체험기를 담았습니다.

기사를 쓰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여름이 오네. 아 덥다. 속옷이 존재감을 확 드러내는 그 계절이 또 오는구나.’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읽었는지 SNS에는 유독 편한 브래지어 광고가 올라왔습니다. ‘안 입은 것 같대. 편하지만 가슴은 모아준대. 셔츠인데 유두를 가려줘서 이것만 입어도 된대.’ 광고들을 보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출처:경향신문DB

그래, 브래지어 얘기를 한번 써보자 싶었습니다. 흔히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것을 ‘노(NO)브라’라고 하는데, 그 말은 뭔가 불편했습니다. 입는 게 정상인데 안 입는다는 뜻이 포함된 것 같아서요. ‘탈브라’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미 ‘유브라, 탈브라’라는 단어로 SNS엔 많은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한국 사회에서 탈브라를 경험하고 실행한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제 주위에는 탈브라를 하는 사람이 없어(보여)서 어떻게 인터뷰할 사람들을 구할까 고민했어요. 드랙킹 취재 때 만난 드랙아티스트 ‘아장맨’이 생각났습니다. 아장맨은 흔쾌히 자신의 트위터에 저의 글을 올려주었습니다. ‘탈브라 아무말대잔치를 벌여보자’는 내용이었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10대부터 70대까지… 덴마크, 파리, 네덜란드의 교민과 유학생까지. 이성애자, 성소수자, 직장인, 프리랜서, 학생, 딸을 키우는 주부 등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탈브라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약 70명의 연락을 받았는데 시간의 한계 때문에 그중에서 31명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편하려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다가, 아파서 등등) 탈브라를 시작했다가, 점점 자신의 몸과 이 사회의 금기, 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얘기해줬습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처진다고, 브래지어 끈은 보이지 않게 하라며 엄마에게 혼났다는 한 여성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왜 우리는 가슴을 꼭 가려야 하며, 가린 것도 가려야 하며, 보이지 말아야 할 가슴까지 그 와중에 남들 기준에 예뻐 보이게 관리해야 하는 거죠?” 불편한 속옷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음란한 시선과 모순적인 규제가 많은 상처를 새겼으며, 2000년 이후 태어난 학생들까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설리씨 얘기를 했습니다. 설리씨는 최근 방송에서 “브래지어는 액세서리일 뿐”이라 해서 박수를 받았죠. (사실, 취재하며 설리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어요. 설리씨, DM 보내 미안해요. 어쨌든 그 마음,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쫄보 중의 쫄보’랍니다. 그런 저도 지지난주 탈브라를 실행해봤습니다. 외국이었고 남들은 거의 수영복 차림인 분위기였지만… 그때 느낀 해방감을 뭐라고 표현할까요. “자유로워서 자유가 뭔지 잊었다”고 해준 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탈브라 기사의 주제는 “여러분, 브라를 벗으세요!”가 아닙니다. 브라를 입고 벗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함께 나눠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어머머머. 개인이 속옷을 입고 벗고를 사회가 규제하던 시대가 있었대. 여성과 남성의 가슴을 차별하던 시대가 있었대”라며 갸우뚱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탈브라 취재를 도와준 많은 분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자유를 동경하는 쫄보였습니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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