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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외교·안보 관련 학술회의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분야가 남성 편향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발표·토론·사회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전문가 대부분이 남성이다. 어쩌다 여성 전문가가 하나라도 끼면 으레 ‘홍일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홍일점’, 이 말은 사실 여성을 꽃으로 비유한다는 점에서 여성 전문가들로서는 듣기 거북할 것이다. 저변에 깔린 우리 사회의 특성이 여성을 ‘꽃’으로 인식하게 하고, 여성의 참여를 제한한다. 국민소득이 증대되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부모의 아들딸 차별은 없어졌지만, 사회진출을 꿈꾸는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과 마주친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성 전문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또는 여성들의 참여가 저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변명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의 참정권 역사를 살펴보면, 민주주의 시발점이었던 프랑스대혁명 이후 일반시민들은 참정권을 부여받았지만, 여성은 자동적으로 제외되었다. 1800년대 후반 이후 여성의 참정권이 여성운동의 중심의제가 되었고, 세계 대부분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1960년대부터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획득이 여성운동의 주요 과제로 대두됐다.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 정치발전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현재 4당 중 3당의 대표가 여성이다. 서구로부터 이식받은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민주주의 정치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일상적으로 느끼는 문제들을 공적 영역에서 제기하고 논의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배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남녀동수 내각을 약속하고, 일단 여성 비율을 30%로 시작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1기 내각 구성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 남성편향적이고 국가중심적인 외교·안보 사안에 여성을 수장으로 임명했다. 정치권력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강경화 장관은 자력으로 국제외교 무대에서 능력을 키워 남성들만의 성역처럼 여겨져 온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유리천장’을 깨고 솟아올랐다. 여성후학들에게도 롤모델이 될 것이고, 앞으로 제2, 제3의 강경화도 나올 것이다.

국제정치학이 국가중심적이고 남성편향적이어서 전쟁과 평화 연구에 여성의 경험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분단국인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와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는 70.7%이고, 7급과 9급 공무원 여성 합격 비율도 41.7%, 57.6%이다. 다만 4급 이상 여성 공무원은 여전히 전체의 10.6%였다.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연구하는 여성 전문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비켜갈 수 없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연구와 활동을 했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적·국가적 참여와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지 되짚어 봐야겠지만 실력과 경력을 갖추고도 기존편견과 고정관념의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는 탈냉전시대에 살고 있다. 탈냉전시대에선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배리 부잔이 말한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사항을 포함한 ‘확대된 안보개념’이 필요하다. 그래서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과 참여가 기대된다. 예를 들면 분단국인 우리의 경우 탈북자의 남한사회 정착 문제와 북한인권 문제가 그런 분야일 것이다. 탈북자의 80%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전문가들이 탈북자의 우리 사회 적응과 정착, 복지정책을 개발하고 일선 업무에도 나선다면 효율적일 것이다. 북한인권 개선 문제도 여성의 시각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인권개선의 가치를 실현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성의 참여와 역할로 통일·외교·안보 현상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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