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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4일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김부겸 장관은 기록 관련 질의를 받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기록관리가 발전했다는 기조로 답변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의외의 답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검찰이 이전 정부에서 공명정대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는 답변이 나온다면 큰 사회적 파장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공적 기록관리는 노무현 정부 때 토대가 마련되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급격히 후퇴했다는 것이 기록 관련 학회와 전문가단체, 시민단체의 중론이다. 2008년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 고발사건, 2012년 대선 당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사건, 2017년 박근혜 대통령기록 무단폐기 및 이관 적법성 논란, 대통령경호실의 문서목록 미작성, 기록 블랙리스트 논란 등은 퇴보를 거듭한 기록관리 분야의 쓸쓸한 단면이다.

기록은 노무현 정부에 와서야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기록혁신을 단행했다. 대통령기록은 2007년에 제도가 마련되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뒤이은 정권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이관된 대통령기록을 이용해 정치공세를 벌이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훼손했다.

김부겸 장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대통령기록을 1000만건 넘게 이관했으니 기록의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게 아니냐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편의적인 해석이다. 1000만건이라는 수치는 문제가 있다. 홈페이지 등 웹 기록이나 사진은 시대적 추세이다. 현재 이관된 기록의 대다수는 이런 기록이다. 대통령기록의 핵심은 대통령보고서, 대통령 회의기록, 외교안보기록, 주요 정책문서 등이다. 지금 이런 기록이 이관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주무기관인 국가기록원이 상세한 이관과정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량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대통령기록 무단폐기 및 이관 적법성 논란이 심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은 국가기록원이 문제였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가기록원은 정부기록을 책임지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다. 공공기록법과 대통령기록법을 운용하고 있으며 대통령기록관을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다. 정원은 350명이다. 국민이 국가기록원에 이렇듯 막강한 권한을 주면서 책임을 맡긴 것은 기록이 민주주의 성숙의 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갈등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오히려 거셌다.

국가기록원 개혁이 대한민국 기록 정상화의 시발점이다. 개혁방향은 국가기록원의 독립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은 행정자치부 소속기관이다. 국가기록원장은 행자부 국장급이 임명되며 임기는 평균 1년이다. 독립성도 안정성도 없는 이런 상황은 행자부 인사관행이 낳은 기현상일 뿐, 기록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조직의 수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국가기록원장이 바로 서야 국가기록원 독립도 바로설 수 있다. 소신과 전문성,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정신과 역사의식이 투철한 기록전문가가 국가기록원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가기록원장 직위를 개방직으로 풀어야 한다. 기록의 무게를 감당할 기록전문가가 우리 사회의 기록운명을 이끌어가야 한다.

기록이 발달한 곳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록공직자가 있다. 이 자리에 오른 기록전문가가 국가기록을 책임진다. 미국은 국립기록관장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국립기록관(NARA)은 1930년대 설립된 이후로 줄곧 총무처 소속기관이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독립해 연방정부의 기록관리를 전담하는 독립행정기관으로 탈바꿈했다. 수장은 국립기록관장이면서 동시에 ‘미국 아키비스트’라는 상징적 지위까지 부여받는다. 이런 이유로 행정관료가 아닌 기록전문가가 국립기록관장이 된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한민국 아키비스트’가 필요하다. 단지 수량이 아니라 기록의 무게를 감당할 기록전문성과 기록의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이영남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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