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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 꼭 100년 전인 1919년 2월8일 일본의 한인 유학생들이 발표한 ‘2·8독립선언’의 선언서 첫 문장이다. 청년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일제의 수도 한복판에서 ‘우리 겨레의 정당한 요구에 일본이 불응한다면 영원한 혈전(血戰)’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아가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새 국가를 건설’하고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겨레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할 것이라고 밝혔다.

2·8독립선언은 ‘3·1독립선언’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앞서 만주·러시아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중국 땅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의 뜻을 계승한 것이자 향후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최팔용·송계백 등은 일제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었음에도 당시 ‘3대 독립선언’의 하나인 2·8독립선언을 결행했다. 그만큼 독립과 새 나라 건설의 뜻이 굳건했다는 의미다.

독립운동 의지들이 뜨겁게 모아지면서 1919년에는 중국, 일본, 서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독립선언이 잇달았다. 일련의 선언은 자주독립국가를 향한 민중들의 의지를 더 다지게 했고,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드러내는 거사였다. 그 토대 위에서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2·8독립선언을 포함해 100년 전 잇단 선언들은 형식이나 내용, 발표 장소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에 공통적으로 담긴, 일관된 고갱이가 있다. 일제에 맞서 자주독립국가를 만들고, 그 나라는 정의와 자유·평등·평화의 가치가 우선되며, 세계 평화와 인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임시헌장 제1조의 ‘민주공화제’로 집약됐다. 물론 100년 전 그들이 간절하게 이루고자 한 그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된 것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민족공동체였다.

오늘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은 물론 도쿄에서도 마련된다. 다른 독립선언들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관련 기념행사들이 많이 예정돼 있다. 이런 행사가 그저 100돌을 기념하는 형식적 행위에 그쳐선 안된다. 지금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100년 전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라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들의 바람, 피와 땀과 눈물에 응답을 하는 일이어야 한다.

100주년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협력이 요구된다. 독립운동은 남북한이 따로일 수 없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어느새 남북은 역사관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남북의 역사관 차이는 예상만큼 크지 않다. 경향신문이 연재 중인 기획시리즈 ‘다 같이 만들어온 세상-다·만·세 100년’에서 처음 공개한 남북 첫 공동역사서 <남북 역사용어 공동연구>(전3권)만 봐도 그렇다. 남북 학자들이 선사시대부터 3·1운동까지의 주요 역사용어를 편찬한 <남북 역사용어 공동연구>를 보면, 독립운동 관련 사건이나 인물 평가가 표현 용어는 다르지만 관점은 비슷하다. 남측의 ‘3·1운동’을 북측은 ‘3·1인민봉기’로 표현하지만 3·1운동의 의미와 중요성은 함께 인식한다. 남쪽에선 안중근을 ‘의사’로 북쪽에선 ‘애국렬사’로 부르지만 그 정신은 모두 높이 평가한다. 유관순이나 신채호·안창호·홍범도 같은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 관련 사건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의 피가 스며든 유적지들은 남북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땅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달 독립운동의 상징인 3·1운동 100주년 행사는 남북 공동으로 치러야 한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것이기도 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공동행사에 대한 남북의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행사를 함께 치러내는 일이야말로 남북 동질성의 한 자락을 회복하는 것이자 독립운동가들에게 남북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응답이다.

또 중국 땅에 묻혀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다시 공동발굴하는 것도 좋다. 분단으로 갈라진 남북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함께 넘나들며 탐방하고, 나아가 세계의 유적지 공동탐방으로 이어진다면 그 의미는 더 커진다. 독립운동사 공동연구 등도 해볼 만하다.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남북 평화정착을 향한 행보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서다. 당연히 대내외적 난관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100년 전 그들이 만들려고 한 민족공동체의 토대를 하나 더 쌓아야 하지 않을까.

<도재기 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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