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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에 갔다. 서울과 구리에 걸쳐 있는 망우리묘지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지는 꽤 됐다. 서울시와 내셔널트러스트 등이 역사인물을 발굴하고 인문학 길을 조성해 명소로 만들었다. 이제 망우산은 공동묘지가 아닌 나무가 울창한 생태 공원이다. 설 전날, 망우리묘지 인물 발굴기 <그와 나 사이를 걷다>(김영식 지음)를 길잡이 삼아 집을 나섰다. 망우리공원에 묻힌 유명인사는 시인 김상용·박인환, 소설가 계용묵·최서해, 화가 이중섭·이인성, 가수 차중락, 독립지사 한용운·오세창 등 50명이 넘는다. 70여만평의 공원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다 만나려면 족히 하루는 잡아야 한다. 이날은 독립운동가로 한정했다.

망우리공원 초입의 역사인물전시장에서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가면 ‘망우리 사잇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15분쯤 오르면 능선에서 도산 안창호의 묘지 터를 만난다. 도산은 독립운동의 밑그림을 그린 임시정부 지도자였다. 살아서 해방을 맞이했다면, 초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큰 인물이다. 1938년 숨진 도산의 유언은 소박했다. 먼저 간 제자 유상규 옆에 묻어달라는 그의 말을 따라 망우리에 묻었다. 그러나 유언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강남에 도산공원이 조성되면서 그곳으로 이장됐다. 유상규의 묘지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경성의전을 졸업한 의사였던 그는 도산의 비서로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다. 도산 묘터 옆에는 흥사단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영학의 묘소, 도산의 사위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김봉성의 묘터가 있다. 강북의 ‘작은 도산공원’으로 불러도 좋겠다.

유상규 묘소 아래 아스팔트 산책로를 따라가면 소파 방정환 묘소가 있다. 방정환은 아동문학가, 교육자, 출판인 등으로 살다가 31세에 요절했다. 3·1운동 때 ‘조선독립신문’을 배포하다 체포됐고 뒤에는 청소년 계몽운동에 앞장선 독립지사였다. 묘소는 망우리에서 가장 아름답다. 자연석의 질감을 살려 쓴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과 ‘동무들이’라고 적은 글씨가 정감이 있다. 이곳에서 50m 남짓에 묘소가 있는 위창 오세창과 호암 문일평은 서화와 역사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독립지사들이다. 오세창은 3·1운동에 천도교 대표로 참여했고, 문일평은 상해 비밀결사에서 활동하고 3·1운동 때 독립청원서를 낭독하며 시위를 벌였다. 문화예술인답게 두 애국지사의 비석과 비문은 조형성이 뛰어나다.

망우리공원에는 이들 이외에 한용운, 오기만, 서광조, 서동일, 오재영 등 9명의 독립운동가가 묻혀 있다. 이 가운데 독립지사로 대한민국장을 받은 만해 한용운의 묘는 최고의 훈격에 걸맞게 일찍 조명을 받았다. 구리시를 굽어보는 산 언덕에 자리한 만해의 묘는 망우리 독립지사들의 묘지를 거느리는 듯하다. 만해의 묘는 2012년 망우리공원에서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5년 뒤 나머지 8명의 독립지사 묘들도 가세했다. 묘지가 집단으로 문화재가 된 사례는 드물다. 망우리에 묻힌 죽산 조봉암과 박희도의 사연은 안타깝다. 조봉암은 일제 때 항일운동으로 8년을 복역했으며 해방 후에는 진보당 창당을 벌이며 주도하다 사형당했다. 박희도는 3·1운동 기독교대표로 참여해 2년간 투옥됐으며 이후 필화사건으로 2년을 더 복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애국지사 서훈을 받지 못했다. 조봉암은 일제에 국방헌금을 낸 사실이 발목을 잡았으며, 박희도는 친일 행위로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9월 망우리공원 이태원합장비 옆에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 표지비가 들어섰다. 1920년 10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이태원공동묘지에 매장됐다. 그러나 1935년 이태원묘지가 개발되면서 지금껏 행방불명 상태다. 일제는 이태원의 무연고 묘 2만8000기의 유해를 화장한 뒤 신설된 망우리묘지에 합장하고 위령비를 세웠다. 망우리의 이태원합장묘에 유 열사의 유해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문적·과학적 확인도 없이 표지비를 세워 사실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망우리공원에는 3·1운동 종교계 대표뿐 아니라 훗날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람은 이들뿐이 아니다. 3·1운동이 평가받는 것은 지역·계층을 초월한 민중운동이기 때문이다. 당시 운동에 참여한 백성은 200만명이 넘는다. 이들 중에는 망우리에 묻힌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망우리공원이 현충원·효창원 등 애국지사 묘역과 다른 점은 유명인사와 무명인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공동의 묘지이자 시민의 공원이라는 점이다. 오는 3·1절에는 망우리공원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행사가 마련됐으면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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