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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때로 얄궂다. 지금 미래권력 앞에서 마주 선 문재인·안희정은 모두 한 사람의 동지였고, 친구였다. “정치, 하지 말라”던 회한을 생각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는 또 다른 예감이었나 싶다. 세상은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바래지던 신화를 다시 불러내고 싶었나 보다.

사람들은 늘 다윗을 사랑한다. 세상이 소용돌이 속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번 골리앗으로 찍히면 손해보는 것도 있다.

일찌감치 ‘문재인’이란 골리앗이 선 2017년 대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모두 문재인 대세론을 입에 올리면서도 촉각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래서 안희정 충남지사의 부상은 설왕설래의 웅성거림을 만들고 있다. 15년 전 ‘이변의 다윗’처럼 그가 1등이 아니란 점, 1등에 대한 비토가 적지 않다는 점이 ‘다윗 드라마’를 꿈꿀 수 있는 상황적 조건이다. 안희정은 15년 전 노무현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

대권행보에 나선 안희정 충남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재경 충청향우회 신년교례회에서 축하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드라마가 집약된 단어는 ‘바보 노무현’일 것이다. 그것은 기득권의 벽에 깨져도 또 머리를 부딪치던 비주류 노무현의 ‘용기와 열정’을 상징한다. 안 지사의 향후가 ‘노무현을 흉내내는 것’과 ‘노무현이 되는 것’도 이 용기와 열정의 현실에서 갈라질 것이다.

“안 지사에게서 노무현의 모습을 보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자유롭게 휘젓고 다닌다는 거다.” 2002년 ‘노풍(노무현 바람)’을 함께한 친노 인사의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가 “노무현 초기 모습이 보인다”고 했던 것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안희정의 용기의 한 자락을 대연정에서 본다면 과도할까. 대연정 동의 여부를 떠나 자신이 기반을 둔 정치적 지지층의 상식에 반하는 파격을 주목한 것이다. 당연히 대연정론은 야권 내부에서 화살을 맞았다.

대연정은 사실 노무현 정부를 실패로 몰아간 대표적 사건이다. 그런 대연정을 노무현의 사람이 다시 꺼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편에선 계승이면서, 또 다른 도전일 터다. 그는 “내가 가장 새로운 진보를 제안하고 있다. 정치 인생을 통틀어, 정말로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겪으며, 극단적 대립 속에서 지방정부를 이끌어오면서 30년간 쌓아온 내 이야기”(시사인 인터뷰)라고 했다.

주류 여론을 거스르는 점에서 용기일 수 있다. “여론조사에는 비전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기에, 여론은 참고자료로 해야지 쫓아가다 보면 장기적 과제를 잊어 버린다”고 참모들에게 당부하던 노 전 대통령이 떠오르기도 한다. 실제 안 지사 지지율은 대연정 논란 후 오히려 상승했고, 그는 “국민들이 내 철학을 이해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통합’이란 제1가치는 노풍을 만든 열망들과는 충돌할 수 있다. ‘정의’라는 지금 민심의 제1요구와 불화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을 전복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던 ‘정의에 대한 열정’과도 다르다. “심장이 뛰고 마음에 불이 붙었던” 열망들이 보이지 않는다.

안 지사의 급부상에 정치권은 분석에 들어갔을 터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된 모든 조사들을 한 진영이 살펴본 결과 그의 지지는 ‘무당파, 호남 국민의당 지지층, 바른정당 지지자, 50대 이상’이 특징이었다고 한다. 15년 전 ‘노무현 바람’의 진원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거리가 있다.

실제 현안마다 안 지사의 입장은 민심의 요구에 비춰 뜨뜻미지근하다. “시장의 자원 배분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유의 발언은 ‘박근혜 국정농단’ 이후 현실에서 보면 “도 닦는 소리”쯤으로 들린다. 아무리 어려워도 틀린 건 고치고 바꿀 건 바꿔야 한다. 그런 미적지근함으론 이 견고한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야권에서 “적폐청산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부족하다. 그걸 대연정이라는 기술로 커버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무현은 변화의 ‘아이콘’이었다. 그래서 웅변이고 힘이었다. 안희정은 지금 변화의 아이콘인가, 열망의 아이콘인가.

그의 우려처럼 통합 없는 정의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일 수 있다. 하지만 정의 없는 통합은 ‘공허’와 ‘실망’이 될 것이다. 통합의 설득을 위해 반드시 정의에 대한 비전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통합의 용기가 내면 한켠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철학은 정치적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결속을 만드는 거멀못과도 같다. 통합이 단순한 탈진영이 되어선 곤란하다.

이는 그의 지지율 상승이 보수·중도층의 유랑하는 관심일 뿐이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실패하면 대연정은 용기가 아닌 그저 교묘한 기술로 끝난다. 그 경우 그의 ‘노무현 되기’도 없다.

김광호 정치·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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