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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만 20년을 채웠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멕시코, 터키와 더불어 OECD 내의 ‘못난이 3형제’다. 노동시간, 자살률, 노인 빈곤율 등 부정적인 분야에서는 OECD 상위권을, 수면시간, 노동자 근속 기간 등 긍정적인 분야에서는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어서 붙은 별명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못난이 3형제’를 면할 뿐 아니라 ‘선배 선진국’마저 압도하는 분야가 바로 공교육이다. 높은 학업 성취도는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은 학습 시간 등의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학교 시설, 교육 인프라, 우수한 교원의 확보, 평등한 교육 기회 등 우리나라 공교육이 OECD 최상위권을 차지한 분야는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자신감, 학교에서의 행복도, 교사에 대한 존경심,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교사의 직무 만족도와 직무 효능감 등은 ‘못난이 3형제’마저 멀찌감치 따돌린 압도적인 최하위다. 비유하자면 훌륭한 연주자, 좋은 악기, 쾌적한 공연장을 갖췄지만 청중과 연주자 모두 불만에 가득 차 빨리 공연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이는 연주하는 곡 자체가 졸렬하거나, 오케스트라 운영방식이 잘못되었거나, 지휘자가 무능한 탓이다. 지난 10년간 교육당국은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정권 입맛에 따라 누더기나 다름없는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그걸로 모자라 걸레로도 못 쓸 국정교과서까지 들이밀었다. 그 밖에 수많은 낡은 교육제도와 시대착오적 교육법이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가로막았고, 거기 기생하는 관료들이 변화에 저항하고, 정권의 눈치를 보며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교육을 왜곡했다.

2017년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다. 개헌 논의도 활발하다. 그렇다면 이참에 국가의 100년 기틀이 되는 교육도 개헌 수준으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교육법은 교사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보호하고, 정권이나 기타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지켜주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중앙에서 획일적으로 내리 먹이는 것이 아니라 교육현장에서 교육전문가들의 토론, 교육자와 학생의 만남 속에 생성되어야 한다.

이런 식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교육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통해 충성경쟁을 벌여왔던 교육 관료들의 권력도 저절로 무너지고, 우리나라 100년의 장래가 거의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반대로 교육 관련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교육부 장관이 바뀌더라도 낡은 저 교육체제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 헌법 공부가 유행이라고 한다. 헌법을 공부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다. 그렇다면 교육법을 공부하는 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새해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교육법을 공부하는 모임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손바닥 헌법’처럼 ‘손바닥 교육법’ 같은 책자도 나왔으면 한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교사가 자신들을 개·돼지로 만드는 권위주의적이고 낡은 법 조항들을 샅샅이 밝혀내 폐지를 요구하고, 그 자리를 대신할 조항들을 만들어 제안하고 공론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는 교육의 개헌이며, 결국 우리나라 미래 100년을 책임질 개헌이다. 2017년이 교육주체들에 의한 교육 개헌의 원년으로 기록되기를 꿈꾸어 본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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