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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 중간고사를 치르기 때문에 요즘을 중간고사 대비기간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중·고등학생이 있는 가정마다 온통 비상이기 마련이다. 학생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기는 날들이 시작되었으니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전쟁이 된다. 적으면 3~4시간, 많아야 5시간에 불과한 수면을 하는 것이니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아침에 별 탈 없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미션일 수밖에 없다.
이런 비상이 걸리는 곳으로 학원들도 있다. 학원들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2~3주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4주 또는 한 달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한다. 학원들에서 이렇게 긴 내신 시험 대비기간을 설정하는 이유는 학교 성적이 대학입시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즘은 예상 시험문제를 잘 가르치는 경쟁에서 학생들에게 내주는 엄청난 과제 분량의 경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동안은 시험 대비기간을 한 주씩 늘리는 방식으로 경쟁했지만 4주 이상으로 기간을 더 늘리면 사실상 상시 시험 대비라는 무리한 일정이 만들어지기에 대신 숙제를 많이 내주는 것으로 학습 강도를 높이는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학원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어서 선호된다. 학생들이 집에 있는 동안 힘겹게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이 아이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학원에서는 할 만큼 했는데 학생이 따라오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가능하니 학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여기에 덧붙여 시험 기간 중 학생들이 학원에 머무는 시간도 늘린다. 평시에 3시간 수업이었다면 4시간 동안 학원에 있게 하고 그중 1시간은 대학생 조교들을 활용해서 시험 대비 문제풀이를 하게 한다. 물론 이 시간도 똑같이 학원비가 과금된다.
이렇게 학원들마다 숙제량 경쟁과 시간 끌기 경쟁을 하기 때문에 여러 곳의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니는 학원들마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데 학습시간을 쓰도록 과도한 숙제를 내주다보니 그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학생은 매일 새벽까지 학원 숙제를 하느라 진짜 필요한 자신의 공부를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면 학생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학원 숙제를 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과거와 같이 강의식 수업이 아닌 참여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데다 학원 숙제도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된다. 물론, 그런 상황을 모두 다 잘 챙기고 높은 성적을 받아내는 학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소수일 수밖에 없고 나머지 학생들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암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낮아져서 전국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처럼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학습량이 부족해서 기초학력이 낮아졌을까? 아니면 불필요하고 부조리한 교육환경에조차 접근 못하는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일까? 과거 권위적인 정부와 어떤 면을 슬금슬금 닮아가는 교육당국의 발걸음이 무서워진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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