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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재지정 평가 문제로 교육계가 시끄럽다. 대표적인 자사고인 ‘상산고’ 재지정 평가 기준 하한선을 전북도교육청이 10점 상향해 80점으로 높인 것에 학교 측이 반발했다. 자사고 폐지를 위한 수순이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자사고 재지정 평가 절차에 돌입하자 자사고 연합 측이 이를 거부했다. 재지정 기준 하한선 70점은 자사고 죽이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사실 70점은 자사고를 만든 이명박 정부 시절 재지정 평가 기준이었다. 이를 박근혜 정부가 60점으로 낮추었다가, 현 정부 들어 MB 정부 시절로 회복한 것이니, 자사고 죽이기 정책인지 의아하다. 장담컨대 상당수 자사고들은 70점 하한선을 통과해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자사고의 심각한 폐해를 생각할 때, 재지정 평가 정책이 과연 이를 바로잡을 적합한 도구인가는 회의스럽다. 재지정 평가 정책은 그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는 존속시키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국가적 폐해를 생각할 때 자사고 존속은 ‘약속’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위를 해소해야 한다. 즉 자사고 문제를 푸는 길은 재지정 정책이 아니라 시행령을 고쳐 학교의 지위를 일반학교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자사고 문제의 핵심은 고교체계가 서열화되었다는 것이다. 영재고 시험을 치르고 떨어지면 특목고나 자사고에 지원하고, 거기서 떨어지면 자율고나 과학중점학교 등을 거쳐 최종 탈락자들이 일반고를 지원한다. 말이 되는가? 서울대 떨어지면 연대·고대 입시를 치르고 거기서 떨어지면 ‘인서울’ 대학 입시를 치른 후 지방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떨어진 학생들을 전문대가 받아들이겠다면, 어느 국민들이 수용할까? 그런데 이 희한한 입시 정책이 고교 단계에서는 먹히고 있다.

이 체계에 적응하느라 중학생들이 입시 노예가 되어 버렸다. 중학생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춘기를 통과하는 존재다. 내가 네가 아니고 나인 이유를 찾는 시기, 어른이 아닌데 어른 대접 해달라고 요구하는 질풍노도의 존재들이다. 그 터널을 통과하며 자기를 발견하고 세우는 시기다. 어른이 아니니 너희들에게 그 자유를 줄 수 없다고 해도 소용없다. 누르고 감독하는 존재가 아닌, 자식의 친구로 그 위치를 조정하지 않으면 자식의 마음을 만날 수 없다. 그 준엄한 시기에 부모들이 품안에 움켜쥐었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자식들에게 “너는 자유인이니, 네 판단과 감정을 존중하겠다”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관계의 전환을 시도할 때다. 그 시기를 그렇게 거쳐야 자식은 주어진 자유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며 실패 속에서 성장한다. 부모 역시 그래야 자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진로는 ‘결정’할 시기가 아니라 다만 ‘탐색’할 시기일 뿐이다. 

그 엄중한 때에 허다한 부모들이 임박한 고입 걱정에 얼어붙어 그나마 있던 자유마저 회수하며 아이 목을 잡고 입시 트랙을 달리게 한다. 부모가 열어준 여유의 공간 속에서 퇴행과 방종의 사춘기를 거쳐야, 자식은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남의 미래가 아닌 내 미래를 사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 귀한 시도가 모두 억제된 채 경주마로 달리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대입 경쟁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고입 경쟁만큼은 막아야 한다. 재지정 평가나 고교 입시만 손질할 일이 아니다. 속히 고교체계도 바로잡아야 한다.

<송인수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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