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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언론이 주도하는 국무위원 후보자의 검증 과정은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 주류 엘리트들의 인생사를 하이라이트만 추려 보여주는 드라마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꽤 시간이 흐른 때문인지, 이 단막극의 주인공들은 이제 나름의 전형성을 획득한 듯 보이고 서사와 플롯도 일정한 패턴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사실 이 드라마의 참 재미는 주인공의 버티기 능력에 달려 있다. 임명권자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주인공의 행적이 밝혀지는 것은 기본 메뉴이고, 주인공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중도 하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 갈등축이다. 그렇다면 이 주인공들의 인생사를 하나로 엮어 미니시리즈를 구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매번 반복 연출하는 것보다는, 큰 이야기의 기본 얼개 위에 주인공을 배치시켜 그들의 행적을 추론해 보는 것이 인사 검증에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일단 1940년대 출생자라면 전쟁의 참상이, 50년대 출생자라면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의 가난이 개인사의 출발점이자 원체험의 풍경일 것이다. 그리고 4·19혁명과 유신체제가 청년기의 성장 배경으로 펼쳐질 것이다. 극적인 상승의 서사가 시동을 거는 것은 그 다음이다. 60년대 중반 이후, 경제 성장과 더불어 사회 전반에 걸쳐 요철과 굴곡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를 잘 만나 사회적 지위를 고스란히 증여받은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비중은 앞 세대에 비해 줄어드는 추세였다. 경제 성장은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 대다수에게 출세의 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4·19혁명의 첫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던 60년대 중후반, ‘소시민’ 논쟁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일군의 사회학자들은 이 젊은 엘리트 집단이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공적 대의와 사적 욕망 간의 균형 감각을 체득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근심하고 있었다. 그들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일까. 이 소시민 계층의 선두 주자들이 주류의 궤도에 막 진입하려던 1970년대에는 특정 종교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그들이 안정된 삶을 구가하던 1980년대에는 김수현표 멜로드라마가 큰 인기를 모았다. 그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마다 들어선 교회 주변을 배회하면서 자신의 모순된 삶을 가장 잘 이해해줄 초월적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고, ‘사랑’과 ‘야망’을 주제로 삼는 드라마를 보면서 인생을 반추하며 다음 행보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 그들의 목표는 사적 욕망 쪽으로 한참 기운 상태였다. 더 큰 성공, 더 많은 재산, 더 나은 자녀 교육 등. 실제로 19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 이후 거의 20년 동안 그들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6월항쟁이 있었고 외환위기가 있었고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지위는 높아졌고 이권은 커졌으며 땅값은 올랐다.
그리고 대망의 21세기, 그들 중 일부가 고위 공직자의 부푼 꿈을 안고 인사 검증의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 무대에서 상연된 것은, 공적 대의는 온데간데없고 사적 욕망만이 끝없이 펼쳐지는 막장극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뀐다고 이 막장극의 양상도 달라질까.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바이 코리아’부터 ‘아파트값 폭등’에 이르는 시기의 자산 증식 내역이 특정 세대 엘리트 일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고도성장기의 수많은 잔해들이 개인 이력서 뒷면에 몸을 감춘 채 등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막장극을 끝장내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앞선 세대가 포기한 삶의 모델, 그러니까 공적 대의와 사적 욕망 간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시민적 삶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첫 단계가 아닐까. 그 모델이 공유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윤리 감각은 갈수록 무뎌질 것이다. 기성 엘리트들의 행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드높지만, 우리는 여전히 빈손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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