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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귀로 국수를 먹습니다 바람국수를요 바람이 키운 아이가 국수를 말고 있습니다 굶어죽은 사람의 마지막 숨결이 고명으로 얹혔네요 누군가 어깨를 들먹이며 울먹이는 국수 흐느끼는 국수 한숨으로 울음으로 뜨거워진 국수를 먹습니다 내 안에 사는 허기라는 이름을 가진 짐승은 다리가 코끼리를 닮았고 대가리는 쥐를 닮은 놈이 배창새기가 흰고래수염만큼 커서 그 허기가 말도 못하여 저승 윗목에 부는 바람같이 막을 길이 없습니다 국수를 먹습니다 불치의 국수를 집 없는 국수를 문이 없어 꽉 막힌 국수를 팔다리 잘리고 몸뚱이로만 굴러다니는 불구의 국수를 - 조길성(196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허기가 수십 년간 익을 대로 익어 국수가 되었네요. 바람결에서 국숫발을 뽑아 만든 국수. 먹지 않아도 후루룩후루룩 맛있는 소리가 나는 국수. 울음이 국물이 되고 “굶어죽은 사람의 마지막 숨결이 고명으로” 얹힌 국수.
허기는 자라고 자라 아무리 먹어도 배불러지지 않는 커다란 배가 되었네요. 먹으면 먹을수록 더 배고파지는 위장이 되었네요. “다리가 코끼리를 닮았고 대가리는 쥐를 닮은 놈”, “배창새기가 흰고래수염만큼” 커다란 짐승이 되어 배를 채워달라고 끊임없이 보채네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는 막막하고도 넓은 백지를 시로 채우고 싶은 상상력이 되었네요. 그토록 몸에서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허기는 이제 없으면 살 수 없는 불치병이 되었네요.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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